영국으로 떠나기 5시간 전, 그제야 나는 캐리어 열쇠를 단단히 채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거실에 앉아 어머니와 아프리카 지도를 보며 얘기를 나눴다. 용맹스런 호랑이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아프리카의 수많은 직선의 국경들, 오래 전 침입자들이 멋대로 그어놓은 국경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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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찌감치 에서 내 원맨쇼를 지켜보는 어머니는 그저 조용히 미소를 보냈다. 며칠 전 나 없이 지낼 일 년 반을 상상하다 울컥 했다는 어머니 앞에서 나는 강해져야했다. 웃고 또 웃으니, 출국 할 때도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2시간이 지나 경유지인 홍콩에 내렸다. 환승시간이 1시간 밖에 되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뛰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엉겁결에 나도 함께 뛰었다. 검색대의 긴 줄도 지나쳐 어렵게 환승게이트까지 갔으나, 아차.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시차였다. 홍콩은 한국보다 한 시간 느리다는 사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한 번 웃었다.
총 19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와 관련해 수많은 루머가 돌았지만, 쉽게 통과해 짐을 찾을 수 있었다. 예상 못한 복병이 생겼다. 역으로 향하던 중 가방 끈 한 쪽이 찢어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곧 안도했다. “젠틀맨”이 있는 나라 영국, 몇몇 신사의 도움으로 나는 킹스크로스역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기차에 올라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기차 안에 울려 퍼지는 기관사의 멘트는 내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영국 특유의 악센트 때문에 정차역을 놓칠 뻔했다. 역에 내렸는데 반갑게도 카메룬에서 왔다는 학생이 마중 나왔다. 그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내일 학교를 떠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뜬금없이 “아프리카 어때?”라고 물었다. 그는 눈을 감고 “뷰티플”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