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②
‘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②
  • 허지희
  • 승인 2008.11.04 19:22
  • 호수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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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한국, 그리고 영국 CICD

영국으로 떠나기 5시간 전, 그제야 나는 캐리어 열쇠를 단단히 채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거실에 앉아 어머니와 아프리카 지도를 보며 얘기를 나눴다. 용맹스런 호랑이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아프리카의 수많은 직선의 국경들, 오래 전 침입자들이 멋대로 그어놓은 국경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아렸다.

▲ 마중을 나와준 크리스토퍼
떠나기 전 어머니는 우월감을 버리고 그곳 사람들과 네 것을 나누고 오라 말했다. 이렇게 멋진 이별인사가 또 있을까. 나는 그러겠노라고 했다. 인천 공항에 도착, 조용히 떠나고 싶어 엄마의 배웅만을 환영한 나는 공항에서 홀로서기에 돌입했다. 내가 타는 비행기는 수화물 20kg만을 허용하고 있었지만, 보딩 담당 직원에게 갖은 아양을 떨어(!) 짐 27kg을 모두 실을 수 있었다.

멀찌감치 에서 내 원맨쇼를 지켜보는 어머니는 그저 조용히 미소를 보냈다. 며칠 전 나 없이 지낼 일 년 반을 상상하다 울컥 했다는 어머니 앞에서 나는 강해져야했다. 웃고 또 웃으니, 출국 할 때도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2시간이 지나 경유지인 홍콩에 내렸다. 환승시간이 1시간 밖에 되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뛰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엉겁결에 나도 함께 뛰었다. 검색대의 긴 줄도 지나쳐 어렵게 환승게이트까지 갔으나, 아차.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시차였다. 홍콩은 한국보다 한 시간 느리다는 사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한 번 웃었다.

▲ 킹스크로스 역에서의 간식
두 번째 비행기에 올랐다. 사람들은 영어로 얘기했고 영자신문을 읽었다. 나는 이렇게 고국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승무원이 다가오더니 “한국 분이세요?”했다. 이 비행기에서 유일하게 한국인 승무원이고 승객이던 그녀와 나는 비행기 뒤편 화장실 앞에서 긴 수다를 떨었다. 그녀가 준 마지막 선물은 항공사 마크가 찍힌 노트와 펜, 머리빗, 아이스크림. “행운을 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찡해졌다.

총 19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와 관련해 수많은 루머가 돌았지만, 쉽게 통과해 짐을 찾을 수 있었다. 예상 못한 복병이 생겼다. 역으로 향하던 중 가방 끈 한 쪽이 찢어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곧 안도했다. “젠틀맨”이 있는 나라 영국, 몇몇 신사의 도움으로 나는 킹스크로스역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기차에 올라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기차 안에 울려 퍼지는 기관사의 멘트는 내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영국 특유의 악센트 때문에 정차역을 놓칠 뻔했다. 역에 내렸는데 반갑게도 카메룬에서 왔다는 학생이 마중 나왔다. 그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내일 학교를 떠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뜬금없이 “아프리카 어때?”라고 물었다. 그는 눈을 감고 “뷰티플”이라고 답했다.

▲ "젠틀멘"이 있는 나라 영국의 킹스 크로스 역
짧고 굵은 이 말이 주는 여운은 강했다. 차로 20분을 달려 CICD에 도착했다. 자연과 어우러진 넓은 캠퍼스, 넉넉한 휴양지를 연상케 했다. 내가 도착한 날은 오픈위크이라 학생들이 외출하고 없었다. 내가 상상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나는 다른 그림을 만났다. 티쳐 ‘오사’와 그의 6살 난 아들 크리스토퍼. 이 꼬마는 자신보다 더 무거운 내 캐리어를 방까지 열심히 끌어줬다. “내게 주어진 14개월을 상상하기 힘들다”는 내 말에 오사는 “할 수 있다는 의지 하나면 된다”며 “U can do it"을 반복했다. 방에 들어가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잠들기 전까지 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허지희
허지희

 wink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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