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강의-고은 시인 특강
단국대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강의-고은 시인 특강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12.09 13:16
  • 호수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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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100년의 절반, 시력(詩歷) 50년의 고은 석좌 교수를 만나다

“시는 모든 시의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 시입니다.”
지난 4일 고은 석좌교수는 천안캠퍼스 예술대학 학생극장에서 ‘나의 행로’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열어 한국 현대시 100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 자리에서 고 석좌교수는 “아름다운 한국 현대시를 배우며 단순히 감동에 갇힐 것이 아니라 ‘창조’라는 뛰어넘음이 있어야 한다”며 “시의 역사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창조가 우리나라 현대시 100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의 특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본 없는 강연으로 진행됐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말은 아마 헛소리일 지도 모릅니다”라는 말로 운을 뗀 고 석좌교수는 곧이어 ‘헛소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풀어냈다. 학비를 벌기 위해 하루에 서너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 ‘실존적 위기’를 겪으며 대학 노트에 눈이 갈 수 없는 현실의 학생들을 앞에 두고 “시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헛소리라는 것.

하지만 고은 시인은 “배가 고픈 상황에서도 숨은 쉬어야 한다”며 “그 ‘숨’의 일부로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강연은 한국 최초의 현대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어어졌다. 고 석좌교수는 “최남선이 이 시를 쓸 당시 우리의 언어가 활자화되며 방황하던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이 시는 우리에게 바다와 소년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고 덧붙였다.

먼저 바다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이 시는 이제껏 우리 시에 없었던 바다라는 소재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우리 시에 앞산, 뒷산, 홀짝홀짝 흘러가는 개울과 골짜기는 있어도 바다는 없었다”는 것이 고 시인의 설명이다. 대륙을 호령하면서도 동해를 끼고 제주도와 교류했던 고구려, 일본과 교류했던 발해, 왕실 자체가 바다를 중요시했던 고려까지 바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그 의미가 낯설어졌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고은 시인은 “그러다가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낯선 개념의 시가 등장했고, 이제 이 바다는 우리 시의 집과 같은 개념이 된 것입니다”라며 첫 번째 의미를 부여했다. 고 석좌교수가 이 시에 부여한 또 다른 의미의 대상은 소년. “낯설고 미지의 세계인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노련한 뱃사공이 있어야 하는데, 이 시에서는 소년이 나온다”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소년의 절망적 상황은 곧 한국 현대시의 시작이 그만큼 절망적이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 고은 시인의 설명이다.

“소년은 ‘초기’ 또는 ‘최초’를 의미하기도 한다”며 “소년이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최초’의 의지를 담아내는 시가 바로 해에게서 소년에게이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한국 현대시, 말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서툴렀던 현대시는 김소월과 정지용을 거치며 ‘우리 것’이 된다. 고 시인은 “김소월의 시를 읽으면 슬픔 속에서 나도 모르게 흥이 나고, 정지용의 시를 읽으면 최소한 내일은 죽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생긴다”며 “근대 언어를 절묘하게 사용하는 모습이 이때부터 서서히 나오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100년, 최남선을 시작으로 김소월과 정지용과 같은 시인들을 거치면서 “이제는 우리 현대시가 ‘근대를 서구로부터 받아들이는 수동적 태도’라는 콤플렉스도 거의 없어졌다”고 평가한 고은 시인은 “이제는 타자가 자아를 형성하던 모습이 바뀌어 자아가 세계를 지향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고 시인은 “서정주, 이상, 백석과 같은 시인들의 시를 뛰어 넘는 진정한 창조를 해 달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박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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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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