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⑤
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⑤
  • 허지희(문예창작·4) 양
  • 승인 2008.11.25 15:47
  • 호수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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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렛팅과 코드라이버를 하며 겪은 ‘허쟈’의 운수 좋은 날

“제니! 오늘은 전단지 몇 장이나 돌렸어?”

영국 땅에서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프리카 봉사를 위해 거쳐야 하는 DI 코스 전에 가이아를 택한 것은 학비 감면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낯선 영국생활에 미리 적응하며 하드워킹으로 나를 단련시켜보겠다는 목적이 컸다. 가이아 생활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변화의 중심부에 있었다.

걸음이 느린 내가 이젠 첫 날의 두배 치인 전단지 천 장을 모두 돌리고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첫 날 비에 흠뻑 젖고 개에 물릴 뻔했던 기억은 추억으로 남기엔 너무 선명했다. 일하는 날 대부분 비가 왔고, 하루에 두세 번쯤은 문 앞으로 돌진해오는 개를 만났다. 화장실이 급해 급하게 남의 집 문을 두드린 적도 적지 않았다. 낯선 집 담벼락에서 앉아 샌드위치를 먹다 집주인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 리플렛 도중 만난 고양이.
하루 8시간 하드워킹, 약한 체력에 무리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발목이 접질린 듯했다. 괜찮아지겠지 하다가 일주일 넘게 통증이 계속되어 나는 일을 멈췄다. 하루 휴식을 취한 후 나는 포지션을 바꿔야 했다. 운전자에게 길을 안내하고 사람들이 내놓은 백을 수거하는 코드라이버이자 콜렉터로 일하게 됐다.

나는 길치였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 운전자를 안내하고 리플레터들이 체크해둔 길을 정확히 찾아들어 사람들이 집 앞에 헌 옷을 담은 백을 내놨는지 체크하고, 또 담고. 첫 날, 나는 수십 번 길을 잃었다. 같은 팀 친구인 프란체스카 역시 나를 위해 수차례 밴의 시동을 꺼야했다. 사흘이 지났다. 묘하게도 일에 자신감이 붙었다. 하루 평균 친구들이 전단지를 뿌린 8개 지역을 돌며 헌 옷이 담긴 백을 수거했는데, 어떤 날은 개인당 20개가 넘는 백이 수거됐지만, 또 어떤 날은 평균 5개에도 못 미쳤다.

▲ 또 길을 잃자, 프란체스카가 지도를 펴서 확인 중.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느낌이 좋았던 ‘운수좋은 날’,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경찰이 가이아 티쳐와 얘기 중이었다. 경찰이 방문한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다른 컴퍼니 백을 수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오해가 있었다. 헌옷을 내놓은 주민이 백에 표시를 정확히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다행히 일은 순조롭게 해결됐다.

사실 콜렉팅 도중 다른 컴퍼니의 백을 보고 취하지 않기란 어렵다. 나 역시 갈등했던 순간이 적지 않았다. 헌옷 수거를 통해 궁극적으로 아프리카사람들을 돕겠다는 취지가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흔들렸던 것이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날, 길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시 조수석에 올랐다. 다리 컨디션도 나아져 다음날부터는 리플렛터로 복귀하기로 했다. 코드라이버로 일한 마지막 날, 나는 단 한 차례 길을 잃었다. 일을 마친 후엔 프란체스카에서 초콜릿과 과자를 선물했다. “나 때문에 그간 힘들었지?”하니 그녀가 윙크와 함께 “넌 정말 좋은 코드라이버였어”하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운수좋은 날이었다.

허지희(문예창작·4) 양
허지희(문예창작·4) 양

 wink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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