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공간의 지각변동-사브라, 샤틸라 학살사건(1982)
⑬ 공간의 지각변동-사브라, 샤틸라 학살사건(1982)
  • 이원상(도시계획·부동산·05졸) 대한주택공사 주택도
  • 승인 2009.07.10 16:27
  • 호수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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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정치지각에 균열이 생기면 그것을 인간애로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1982년 중동의 레바논, 어두워진 밤하늘. 아름다운 은하수 별빛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군부의 조명탄이 강렬한 빛을 쏟아내며 밤 하늘을 가로질러 떨어진다. 레바논 기독교계(여기서 기독교계란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를 말하지 않는다. 단지 정치 파벌을 뜻할 뿐이다.) 민병대들이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급습한다.

이스라엘 군부의 비호를 받으며, 레바논 민병대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야수로 돌변한다. 곳곳에서 비명이 들리고 학살자들은 여자, 어린이 등 상대를 가지지 않고 총알세례를 퍼 붙는다. 절규조차 할 수 없는 야수의 시간 앞에서 보편적 정의, 인류애의 자부심과 칼릴지브란과 같은 위대한 시인들이 노래했던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지어린 신념, 인간 자체에 대한 존엄성은 그 시간, 토사가 되어 뒹굴 뿐이었다.

약 3000여명이 목숨을 잃은 학살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이스라엘은 PLO(팔레스타인 해방전선)의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40km에 이르는 완충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완충지를 안전지역으로 설정하기위해 그곳의 위험요소를 철저히 제거하려고 한 것이다.

사실상 당시 이스라엘의 수장이었던 샤론은 레바논에 공권력을 투입하여 레바논 베이루트를 무력화시킨 뒤 그들의 입맛에 맞는 바시르 제마엘(레바논)을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세워 이스라엘의 지역정치 세력권을 장기적으로 넓히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1975년 레바논 내전으로 야기되었던 불안한 정국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에게 종속된 공간하청 관계를 재편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바시르 제마엘이 암살당하자 레바논 내전 세력들간에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이스라엘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레바논 내 친이스라엘 세력을 배경으로 레바논 권력을 해체하고자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레바논 기독교계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이슬람 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시르 제마엘(레바논 기독교계)의 암살에 대한 명목적인 보복이었다. 공간을 바라볼 때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의 레바논에 대한 태도이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정부를 무력화하여 레바논에 친이스라엘 정권을 세우고자 했다. 국가는 국가의 이름으로 그 관할 아래 있는 최고의 강제권력을 운영할 인간집단을 필요(해롤드 J. 라스키)로 한다. 정치학의 기본 공리의 하나는 국가와 정부를 구분하는 것이다.

즉 국가가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는 그 국가의 주권을 위한 실행기구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앞선 명제에서 해롤드 라스키는 국가가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정부에게는 주권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때 이스라엘은 40km 안전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꼭두각시 정부를 세우려고 했다.

즉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공간적 완충지대를 확보하기 위하여 주권국가의 정부를 와해시키려 했다. 즉 이스라엘은 공간을 주권을 위한 실행기구와 동일시 한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레바논 민중을 무시한 것이며 동시에 레바논 민병대의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현장을 방관-호위함으로써 주권 없는 대상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노골화한 것이다.

피는 피를 부른다. 피에 적셔진 땅은 다시 피를 마시겠다고 한다. 공간은 미소를 짓는 아이와 같다가도 괴물을 호명하는 주인에 의해 공간은 괴수의 성격을 지닌 채 돌변한다. 공간의 정치지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것을 인간애로 메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레바논에서는 반이스라엘 투쟁 세력인 시아파 무슬림 중심의 교전조직 헤즈볼라(Hezbollah)가 결성된다. 여기에서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종교전쟁이 아니다. 야수들은 항상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파벌을 형성한 뒤 합리화를 위해 종교의 경전을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

정치는 공간 상에서 전개되고 야수의 힘은 그 힘이 노정되는 길목 굽이굽이에서 공간을 혼란에 빠뜨린다. 힘이 비균질적으로 펴진 상태에서 힘의 축을 중심으로 공간은 단일하게 응축된다. 마치 공간은 젤리와 같이 펴졌다가 탄력을 받으면 응축하는 성질을 보이는 것이다.

벨기에 국내법에는 전세계 전쟁범죄를 상대로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는 “Universal Jurisdiction”(보편적 사법권)이 존재한다. 학살 피해자들이 벨기에에 사법판결을 호소했으나 답변은 이스라엘 샤론에 대한 ‘사법권 행사 불가’라는 통보을 해왔을 뿐이었다.

죽고 찢긴 자들, 힘없는 민중-민족이 하소연 할 수 있는 신문고는 사실상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유고내전에서 현대 자본주의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세르비아의 짐승같은 밀로세비치 군부에게 사냥당할 때, 그것이 유럽 한 복판에서 일어났을 때 조차 모든 식자들이 거의 침묵하는 것처럼 보였다.

공간에 대한 태도가 야수와 같을 때 우리는 절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청춘들이 봄기운이 완연한 이 봄날에 열정적으로 배움의 시간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진심을 다해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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