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연극 ‘청춘, 18대1’
③ 연극 ‘청춘, 18대1’
  • 강난희 기자
  • 승인 2009.07.10 16:29
  • 호수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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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한 선택도 ‘정의’를 위한 선택도 아닌 그들 스스로의 가치관의 선택, 비록 무모할지라도 아름다웠다

지난 2월 24일부터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됐던 ‘청춘 18대 1’은 배우들의 열연과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15일 막을 내렸다. 연극 최초로 극중 배경음악을 음반으로 제작하기도 하며 ‘청춘, 18대1’은 좀 더 특별한 연극으로 관객들에게 인식됐다.

스토리가 주는 긴장감, 액션과 동선이 주는 생동감, 그리고 극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유희적 요소들이 보는 내내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또 반원형의 무대 위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일본어 대사를 매끄럽게 소화한 배우들의 열연과 공연 내내 흘러나왔던 라이브 배경음악은 이 연극이 노력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충분했기에 관객들은 연극이 끝난 이후 뜨겁고 긴 박수를 보냈다.

청춘(靑春). 푸를 청, 봄 춘.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 바로 청춘이다. 연극은 열여덟 소년 소녀들의 청춘을 보여준다. 그들의 청춘은 여러 가지 비유와 상징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때는 1945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했을 당시다.

연극은 그들이 단지 ‘청춘’이기 때문에 그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청춘, 18대1’이라는 제목에서도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야기는 일류 댄서 ‘윤하민’이 일본인 순사에게 ‘그날’의 일을 취조 받는 시점에서부터 역행한다. ‘그날’은 댄스광 동경시장이 댄스홀에서 춤을 추던 중 댄스홀에서 폭탄이 터지는 ‘사고’가 일어난 날이었다.

‘사고’의 발단은 이렇다.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작은 뗏목을 타고 그것을 이겨내겠다던 도쿄대학 유학생 김건우의 죽음을 계기로 주인공 6명이 한자리에 모인다. ‘조국’을 위해서도, ‘정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사랑, 죄책감, 형제애. 그것이 전부였다.

‘댄스홀’로 꾸며진 무대 위에서 오직 사랑, 죄책감, 형제애를 이유로 동경시장을 암살하고자 그 6명의 ‘청춘’들이 ‘춤’을 춘다. 그 어떤 사회 구조적 문제도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원인이 되지 못했다. 비록 그들이 처한 상황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사회가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선택에 그것이 전부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도록 일하다 나이 들어서 죽으나, 일본 X들한테 맞아서 죽으나, ‘춤’을 추다가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병에 걸려 오래 못살 목숨, 사랑하는 사람과 춤추다 죽는 게 좋았다. 어차피 낳아봐야 아비 없는 ‘조센징’인 아기에겐 아버지의 뜻을 잇고자 춤추며 죽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 청춘들의 모습은 어떨까. 지금 우리 청춘들은 자기합리화와 자기연민에 빠져 더욱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청춘’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가치관들을 잃어버린 채 막연히 현실에 안주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청춘, 18대1’은 우리 청춘들에게 무모한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무모하려는 이유가 온전히 본인의 의지라면, 혹은 무모함이 최선의 방법이라면 용기를 갖고 부딪쳐 보라. 무모함은 ‘청춘’이 아니면 어렵다.

강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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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hee85@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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