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회의
⑭ 회의
  • 이종우(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강사
  • 승인 2009.08.05 10:18
  • 호수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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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과 기대승 사단칠정논쟁이 지표

[우문] 학부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종종 ‘조별 프로젝트’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4∼5명이 하나의 조로 모여 공동 과제를 진행하는 건데요, 서로 시간 맞추는 것도 힘들지만 회의를 통해 의견을 모으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의견대립을 보면 우리나라의 ‘회의문화’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올바른 의견 조율’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현답]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들끼리 만나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이 학교 또는 국회라고 할지라도 그 이전에 이미 경험한 것들로 인하여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견이 충돌합니다.

이 때문에 결국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됩니다. 단지 생각이 다르지만 불가피하게 같은 공동체에 있게 되었을 때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그것이 잘 안되었을 때 사고가 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서 국회에서 일어나는 몸싸움입니다.

언론법, 금산법안 등을 놓고 여야가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일은 국제적으로 망신입니다. 전쟁터가 아닌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국회에서 폭력이 일어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죠. 그것을 보았을 때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바라는 것과 같다”(50년대말 영국의 ‘The Time')고 하는 외신기자의 기사가 떠오릅니다.

그것은 충분히 토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우리의 전통이 토론과는 거리가 먼 문화이기 때문에 그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전통은 반드시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의 선비문화로서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 즉 유학논쟁을 들 수 있습니다. 이황은 기대승과 논쟁을 벌이면서 자신의 주장을 수정합니다.

기대승은 이황의 제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황은 제자의 주장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고쳤던 것입니다. 상대방이 옳다면 제자일지라도 수용하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는 훗날 조선시대 선비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토론문화는 일제시대를 기점으로 단절이 되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를 받으면서 토론 또는 회의가 아닌 일방적인 명령하달식 문화가 번지면서 전통적인 토론문화가 점점 사라졌던 것이죠. 그러한 와중에서 해방되고 전통계승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이식되면서 선비, 제국주의문화와 섞여 혼란을 겪게 됩니다.

선비의 전통이 살아있다면 학교에서도 토론을 거쳐 교수일지라도 학생의 의견이 옳다면 자신의 주장을 수정해야 합니다. 학생도 교수의 의견과 다르다면 자신의 주장을 펼쳐 토론을 해야 하고 학생들끼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현재 국회의 사건들은 당리당략에 빠져 있어서 의견조율이 제대로 안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같은 정당이라도 대다수 민에게 피해가 간다면 반대해야 합니다. 여당은 숫자가 많은 것을 무기로 야당과 토론하기를 거부하는 일은 지나치게 권력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권력이라기보다 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은 그들에게 시한부 권력을 준 것이지 폭력을 준 것이 아닙니다. 그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그 고통은 민에게로 향합니다. 따라서 그 법안은 여야의원들의 의견조율 뿐만 아니라 민들과 토론을 거쳐야 합니다. 그것이 부족했을 때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폭력의 극단은 죽음을 불러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용산재개발주민들과 경찰의 충돌사건입니다. 강제철거 이전에 충분히 토론을 거쳐 의견조율을 했다면 주민의 사망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짧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빨리 처리하는 것보다 늦더라도 충분한 토론을 거쳐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 국회 정부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1천원짜리 지폐를 사용할 때마다 그 속의 이황을 떠올린다면 의견조율이 잘 되어 그러한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쓰레기통 속의 장미’가 아니라 현재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룩한 민주주의 즉 ‘진흙탕 위의 연꽃’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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