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샤대학의 축제에는 술과 연예인이 없지만 사람들로 붐빈다.
일본 도시샤대학의 축제에는 술과 연예인이 없지만 사람들로 붐빈다.
  • 왕신영(일본어)교수
  • 승인 2009.08.13 18:27
  • 호수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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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묵처방

왕신영(일본어) 교수

일본 도시샤대학의 축제에는
술과 연예인이 없지만 사람들로 붐빈다
일본에서는 마을이나 도시 어디에서든지 늘 ‘오마츠리’라고 불리는 축제가 열린다.
특히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계절에 교토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들은 정체된(停滯)고도(古都)를 생동감 넘치는 관광지로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다. 기온마츠리와 같은 역사가 오래된 교토의 축제들이 형식화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드리는 흡인력을 지니게 된 데에는 지역 주민의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한 상공인들의 적극적인 추진력과 구체적 프로그램들이 축제에 대한 개개인의 열정을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일본을 즐거워하는 이유 중 하나도 축제 때문이다. 열린 마음으로 분출되는 열정의 순수함이 때로 그리워 나는 축제를 무척 좋아한다. 물론 오래전부터 전래되어 온 일본의 축제에는 제식의 흔적이 여전이 남아있기도 하고 그런 흔적들에 의한 심리적 결속감이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매우 유효하게 작용하기는 하지만 결국 그 기반을 이루는 것은 개개인의 축제에 대한 열정의 힘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온마츠리의 중심지인 한여름 밤의 야사카신사로 유입되는 사람들 속에 섞여본다. 하지만 인파에 떠밀려 들어선 야사카신사의 야시장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평범한 먹을거리, 놀 거리, 구경거리들이 늘어서 있을 뿐이지만 그 기억이 가져다주는 추억에 대한 집단적 개인적 그리움이 사람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한참 전 연구년을 지낸 도시샤대학의 축제에도 다분히 그런 요소는 있었다. 학생 이외의 졸업생이나 일반인들이 많은 것은 그 대학이 교토 시내에서 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오랜 대학 축제의 역사가 졸업생이나 인근의 주민들의 기억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샤대학의 축제에는 술과 연예인이 없다. 동아리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에는 동아리 이름의 규격이 같은 작은 천막들이 늘어서 있고 그곳에서 우리와 같이 갖가지 음식들을 만들어서 판다. 문화 관련 동아리들이 작은 무대를 만들어 공연도 하고 전시회도 갖고 발표회도 갖는다. 우리나라의 부추전을 ‘지지미’라는 명패를 부쳐 파는 동아리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천막 안으로 들어가 주문하였는데 부추 몇 가닥뿐인 밀가루 부침이었다. ‘이렇게 만드는 거야’ 할까 하다가 그렇게 변화된 부침이 일본식 한국부침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먹었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그 때 거꾸로 우리나라에서 파는 야끼소바를 생각했다. 오리지널을 고집하기보다는 그렇게 오가면서 자기들 식으로 바뀌어가는 변화를 즐기는 것이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며칠 전 우리학교의 축제도 끝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들에게 ‘한 턱 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있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축제의 본질이 있다면 개인적인 성향이 점점 심화되는 요즈음 대학가에서 축제의 동력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학축제에서 술이 중심이 되어버리는 것도 그 때문은 아닐까….그러나 그것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일 뿐 기억으로 축척되지는 않는다. 이제 술은 열정이 우리를 축제의 장소에 머물게 할 만큼의 취기(醉氣), 축제가 끝난 뒤의 정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만큼의 취기에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되리라 생각해본다. 술에 의존하는 축제 대신  ‘열정’ 그 자체를 위해 축제의 마지막 날 대운동장에 모두 모여 차라리 춤이라도 한바탕 추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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