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률 통계조사를 취재하며
취업률 통계조사를 취재하며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9.08.13 19:18
  • 호수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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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던가.”
요즘 들어 자주 사용하는 냉소적 말투이다. 1학년 때부터 토익 책을 끼고 다니는 후배들에게, 4학년이 될 때까지 고전 한 번 읽지 않고 면접을 준비한다는 동기들에게 “그렇게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면접을 볼 수 있겠냐”며 덧붙이는 한마디다.
“네 글은 현실과 동떨어진 감이 있다.”
책상머리에서 얻은 얄팍한 지식으로 마치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알고 있다는 듯 말하던 기자에게 누군가가 ‘비현실적 지식’이라는 평가를 내려줬다. 강의실이나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 어느 상황에서나 보편적으로 통용된다고 믿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현실은 언제나 특수한 상황이기에, 이론이 현실을 만나면 동떨어진 지식이 되기 십상이다는 말이었다. 한 학기 동안 ‘인문학을 부탁해’라는 기획을 끌어오며, 인문학이 현실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기사를 쓰던 기자의 모순된 언행을 꼬집는 말이기도 했다.
현실을 향한다며 책을 읽고 이론을 배울수록 현실에서 멀어지게 되는 이러한 모순된 일들은 대학 공간에서 종종 일어난다.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지 못한 보편주의적 이론은 현실에 어둡다는 의미이다. 성공회대 신영복 명예교수는 『강의』라는 책에서 학이불사즉망을 설명하며 “학교 연구실에서 학문에만 몰두하는 교수는 현실에 어둡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현실’이라는 단어를 ‘현장’으로 바꿔도 무리가 없다면,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학문은 관련 현장과 긴밀히 연결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대학에서의 연구가 관련 현장과 긴밀히 연결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이론과 현장의 만남’이 강의실로 한 번 더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취업률 통계조사에서 71.8%의 취업률을 기록(정규직 취업률 48.8%)한 건축대학의 이야기다(관련기사 2면). 건축대학 김정신 학장은 단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교특강’과 ‘홈 커밍 데이’와 같은 동문을 활용한 현장 교류 프로그램이 취업률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업계에 대한 이해와 실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맺어진 멘토링 관계가 실제 현장 경험으로 이어져 취업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아무리 학교 당국이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모든 구성원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도, 학생들의 취업을 교수가 책임질 수는 없다. 연구, 봉사, 교육을 한꺼번에 담당해야 하는 보직 교수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책 읽어라, 영어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조언을 해주는 교수보다는, 연구와 현장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는 교수가 고마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취업이 잘 안 되는 현실에서 비교적 높은 취업률을 기록한 몇몇 학과가 부러운 것은, ‘학과의 유망성’보다 학이불사즉망을 극복하는 학과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박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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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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