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최종회 그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19) 최종회 그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 허지희(문예창작·4)
  • 승인 2009.08.19 10:24
  • 호수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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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이 곳 사람들로부터 배운 진정한 나의 행복


‘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새벽 5시 이웃집 닭들이 울기 시작하면 못 이기는 척 일어난다. 욕실로 가서 크디큰 대야에 물을 받아 손잡이가 한 쪽이 떨어져나가 못 쓰는 스테인레스 냄비로 물을 퍼 버켓샤워를 한다. 후에 물을 끓여 우유가루를 넣어 뜨거운 우유를 한 잔 하고 차비로 낼 70콰차(약 700원)를 웃옷 주머니에 넣어 집을 나서면 마당을 쓸고 있는 우리집 가드를 만난다. 이웃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5분 정도 걷다보면 고물상에 가야 겨우 볼법한 낡은 봉고차가 와서 내 앞에 선다. 말라위 사람들의 대중교통수단, 미니버스다. 넘버도 없어 눈치껏 차에 올라야 한다. 최다 정원 14명을 무시하고 19명까지 태우는 무시무시하지만 재밌고 정이 넘치는 봉고차.

▲동료이자 친구가 된 서점 스태프들과 함께


요즘 내 하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미니버스를 타고 내가 일하는 서점으로 가면, 스탭들이 “물리브완지!”하고 어김없이 인사를 건네고 나는 “딜리 브위노”하고 답한다. 서점에서 정식으로 일한지 이제 일주일. 다 비슷비슷하게만 보이던 검은 얼굴의 고객들 얼굴이 이젠 조금 달라 보인다. 일이 시작된 첫날은 서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을 끔벅이며 살피는 것만으로도 분주했다. 이튿날부턴 다른 스태프들처럼 똑같이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함께 빗자루질을 하고, 책을 정리하고, 점심에는 말라위 사람들의 주식인 시마를 똑같이 주문해 먹었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들이 내게 다가와 장난을 치고, 치체와도 가르쳐주며 동료이자 친구로 대하고 있는 것을.

동시에 나는 DI(Development Instructor)로서 서점을 위해 내가 할 일에 대해서도 차츰 눈 뜰 수 있었다. 우선 서점은 소설, 어린이, 교육, 건강 등 각 장르 구분이 썩 잘 되어 있었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 가격표나 책의 위치 등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아 손님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또한 교육 서적이 많고 잘 팔리고 있었는데 선반이 비좁아 창고에 쌓아두고만 있는 문제도 있었다. 나는 이런 문제들을 프로젝트 리더 및 스태프들과 상의했고, 컴퓨터 워드 작업 및 책 위치를 바꾸기 등을 통해 몇몇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종종 주변 학교로 이동해 헤드마스터를 만나 ‘모바일 세일’이란 것의 허락을 받아내야 하는데, 이는 쉽게 말해 책들을 학교로 가지고 와 학생들이 쉬는 시간 등을 이용해 살 수 있도록 하는 이동서점 같은 개념의 세일이다. 며칠 전 나는 처음으로 스태프와 함께 학교 세 곳을 방문했다. 미니버스에서 내려 30분을 걸어 만난 한 학교의 헤드마스터는 “아중구”하며 나를 반겼다. 돌아갈 때 역시 따뜻하게 손을 잡으며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넸다. 다음 주엔 이 학교로 다시 찾아가 학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책들을 소개해줄 예정이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누추한 차림의 꼬마 둘이 맨발로 나를 졸졸 쫓아왔다. 동전이 없다고 했는데도 버스정류장까지 날 쫓아온 아이들, 형제로 보이는 두 녀석들은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했고 나는 가방에 있던 쿠키를 꺼내 건넸다. 그들은 해맑게 웃으며 뒤돌아갔다. 한 말라위 청년이 이 광경을 보더니 “저들은 먹을 것을 주면 행복해해요”했다.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가드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는데 아저씨가 저녁을 해결할 돈이 없어 요즘 매일 굶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둘러 빵과 차를 내왔는데, 아저씨는 그렇게 행복해할 수 없었다.. 세 자녀를 둔 아저씨가 한 달에 받는 봉급은 우리 돈으로 10만원. 아저씨의 꿈은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도 꼭 가보고 싶다는 아저씨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항공료를 계산해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프리카의 천진난만한 꼬마들

나름 말라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에 살고 있는 나지만, 하루에도 수차례 빈곤을 목격한다. 하지만 쿠키 한 조각에, 따뜻한 차 한 잔 대접에 감동하는 소박한 사람들, 예전 같았으면 좋은 집과 직장을 갖는 것이 내 꿈이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 지금 내게 꿈은 물어오면 난 그들이 배고프지 않고 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얼마 전 친구가 보내온 메일에 난 "이 곳 생활이 행복하다“고 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준 말라위 사람들, 그들을 위해 남은 5개월간 나는 결코 지치지 않을 것이다.
       

허지희(문예창작·4)
허지희(문예창작·4)

 wink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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