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베이, 호주의 동쪽끝에 서다 <하>
바이런베이, 호주의 동쪽끝에 서다 <하>
  • 박선희 기자
  • 승인 2010.03.30 23:35
  • 호수 127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혼자하는 여행의 묘미는 선택에 있다

 

‘님빈(Nimbin)’에서 돌아온 나는 백팩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뒷마당으로 좁게 난 길을 따라갔다. 1분도 채 안되어 하얀 모래와 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비치타올과 아이팟을 챙겨 바닷가로 나갔다. 이상하게도 이곳의 구름은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유난히도 낮게 떠 있었다. 그 구름 사이로 선명한 무지개가 보였다.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카메라를 가지러 뛰어갔다 오니 무지개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손으로 쥐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허무하게 사라져갔다.

▲ 바이런베이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아침부터 짐을 싸고 일찌감치 체크아웃을 했다. 바이런베이(Byron Bay)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등대를 보기 위해서다. 짐을 맡겨놓고 대충 표시된 지도 하나만 들고 길을 나섰다. 지난밤 인터넷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무선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었고, 비치된 컴퓨터는 한글패치조차 깔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도시기에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나의 방향감각도 문제이거니와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또한 강적이었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등대로 가는 방향이 표시되어있었다. 이정표를 따라 걷다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역시 물어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 것 같다. 그런데 등대까지는 숲길로 한 시간을 더 가야 한단다. 그 사람은 내 표정을 보더니 차로는 10분이면 도착하니 히치하이킹을 하라고 했다. ‘한번 해볼까’도 싶었지만 그랬다간 이대로 바이런베이에서 새우잡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등대를 안보고 그냥 갈 수는 없었기에 숲길을 최대한 빨리 달리기로 했다. 나무 사이로 잘 만들어진 산책로는 천천히 걷는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없는 나는 전력질주 했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몇 분이 흘렀는지 생각나지 않았고, 생수는 바닥이 났고, 정신이 혼미했다.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는 선택에 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타고 갈지 심지어 밥은 뭘 먹을지 누구도 대신 선택해 주지 않는다. 이 순간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등대를 포기할 것인가, 버스와 골드코스트를 포기할 것인가.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선순위를 등대로 하되 최선을 다하기로 했고, 나는 성공 했다. 체력은 바닥났고, 발은 다 까지고 물집이 잡혀 걷기도 힘들었지만 말이다.

 

▲바이런베이의 하얀 등대와 파란 바다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바이런베이의 바다는 다른 도시에 비해 유난히 파랬고 커다란 파도는 힘차게 밀려왔다. 목이 말라 한 병에 6.5달러하는 음료수를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하얀 등대와 파란 바다, 빨간 지붕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아주 잠깐 동안 큰 성취감을 맛봤다. 한 시간 전의 나를 생각하니 피식 하고 웃음이 났다. 이번여행은 준비 없이 왔지만 하고 싶었던 것들은 결국 다 해봤던 것 같다. 꼭 하겠다는 마음만으로 어떻게든 해냈던 것이다. 오랫동안 돌고 돌아 온 내 인생도 등대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희망의 예감이 감지됐다.

혼자라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순간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데 익숙하지만 오히려 나 자신에게 집중할 기회는 자주 생기지 않는다.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그런 삶을 살게 되겠지만 완전히 혼자였던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또 가끔은 다시 혼자 떠나는 여행 가방을 꾸리게 되기를. 


바닷가를 가로질러 돌아가는 길, 사방으로 서핑 하는 사람들, 태닝 하는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아이와 부모, 연인들, 친구들이 모여 따가운 햇볕과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떠난 여행에서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항상 옆에 있어주던 사람들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여행은 돌아가기 위해 하는 거라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발에 난 상처에 바닷물이 닿아 따가웠지만 난 마치 오르골 태엽을 감듯이 걷고 또 걸었다. 힘차게 걸을수록 힘이 났기 때문이다.

 


박선희 기자
박선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ippie@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