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우웨이 <현실의 잔광> 개인전
허진우웨이 <현실의 잔광> 개인전
  • 이민호 기자
  • 승인 2010.04.01 17:53
  • 호수 1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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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웨이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묘사했다"

허진웨이의 현실의 잔광(殘光) 개인전 허진웨이의 그림에서 인체를 비추는 약간의 밝은 면을 제외하고는 불길한 어둠의 그림자는 배경뿐만 아니라 소년들의 얼굴까지 새까맣게 뒤덮고 있다. 아이들은 정지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거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 윤곽은 흐릿하게 처리되고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회화는 언뜻 절망적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들에게 어떤 활기나 웃음기도 찾아볼 수 없다. 한창 친구들과 뛰놀고 재잘거려야할 소년들에게서 낙담하고 있는 표정과 그늘진 모습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심지어 핏기마저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은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손을 놓고 점점 어둠 속으로 침윤되어가는 이들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다행히도 아이들에겐 희망이 함께한다. 빛은 아이들이 미래사회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상징한다. 어슴푸레한 오렌지 빛은 어둠에 가려버린 세계를 깬다. 잔광(殘光)은 대지를 점점 두루 비춘다. 튼튼하고 눈부신 빛이 허진웨이의 ‘아동들’에 스민다. 어느 순간 희망과 피폐함이 교차하기 시작한다.

허진웨이 작품 중 무지개는 오직 한 번 등장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이들 모두가 잔광 위에 떠 있는 무지개를 바라보지 않는다. 기자는 잔광이 미래의 ‘희망의 빛’이라면 무지개는 현실의 ‘행복’을 상징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어두운 아이들의 초상과 더불어 아이들이 경제개발의 이면에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단언컨대 당신과 내가 있던 유년의 어두운 곳이 행복이 자라는 공간이 되지 않았다. 재개발로 어린이집이 헐리면서 아이들이 갈 곳을 잃게 됐다는 뉴스와 철거현장 집수정에 어린이 2명이 빠져 익사했다는 기사 등에서 알 수 있듯 한국사회에서 아이들은 경제개발에 따른 진통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앞만 보고 끊임없이 질주하기에 여념이 없는 동안 아이들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가고 있다. 허진웨이의 ‘우울한 아이들의 초상’을 보고 어둡고 우울했던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잠시나마 우리가 ‘미래의 희망’이라고 마지않는 아이들이 안고 있는 고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건 어떨지.

 이민호 기자 sksdlal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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