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인식
패턴인식
  • 이건호 기자
  • 승인 2010.11.16 23:37
  • 호수 12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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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번호 1-2-3-4-5-6이 주는 의미

   ◇내셔널 복권은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하루에 두 번 추첨하는 행사를 열기로 했다. 첫 번째 추첨에서 24-39-6-41-17-29의 숫자가 나왔다. 이제 두 번째 추첨이 시작된다. 해설자의 말을 들어보자. “자, 이제 첫 번째 번호가 나옵니다. … 세상에, 이럴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첫 번째 번호는 1입니다. 좋습니다. 다음 번호를 보죠. 세상에, 이럴수가 2입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이제 세 번째 번호가 나옵니다. 잠깐, 이거 누가 장난치는 건가요? 세 번째 번호는 3입니다.” 추첨은 마지막까지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1-2-3-4-5-6. 순서대로 깔끔하게 정리된 숫자들이다. 사방에서 난리가 난다. 주최 측은 당첨금 지급을 보류하고 기계를 가져다 점검한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복권 값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더니, 이내 봇물처럼 요구가 증폭된다. 의회에서까지 이 문제가 다뤄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괴짜생태학』 중에서 (저자: 브라이언 클레그)>

   ◇단순한 복권 추첨에서 기묘하고 불쾌한 현실이 드러난다. 앞의 복권 추첨 결과에는 놀라운 점이 전혀 없다. 1-2-3-4-5-6이 나올 확률이나 24-39-6-41-17-29가 나올 확률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확률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확률이 부자연스럽고, 항상 우리를 속이는 것 같다고 느낀다. 진화과정에서 타협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능력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확률을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은 패턴인식이라는 능력 때문이다. 우리는 패턴에 의존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정보 과부하로 쓰러져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학문을 배우는 것은 이러한 패턴인식을 깨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단순한 현실 인식이 아니라 역사·정치·경제·사회 등 주변 환경과의 관련성을 깨닫고 숨겨진 원리를 찾아간다. A와 B의 관계를 넘어서 그것과 관련된 것들의 의미를 알아차림으로써 변형도 가능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도 가능하다. 따라서 학문의 범위는 한 분야로 좁혀져서는 안 되고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대학의 학문도 다시 패턴인식에 빠지고 있다.

   ◇시험에 나올 수도 있으니 집중해서 보라는 교수님의 말씀. 학생들의 관심사 또한 어느 정도 하면 A+ 또는 A학점을 받을 수 있는지, 취업을 위해서는 적어도 어떤 요건들을 갖추어야 하는가에 그치고 만다. 수업시간 학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논쟁거리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진다면 많은 학생들은 이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것이다. 조별수업, 토론수업도 본래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패턴인식에 빠진 학문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재의 모습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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