⑳ 늘어지는 정신을 이겨내야 해!
⑳ 늘어지는 정신을 이겨내야 해!
  • 천미르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29 14:08
  • 호수 14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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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수강 신청한 전공 강의. 첫 수업 때는 넘치는 열의로 강의실 앞자리도 맡아보고, 필기도 열심히 해봤다. 하지만 자리는 점점 뒤로 넘어가고, 이제는 출석 부르고 슬쩍 나갈까 하는 유혹도 든다. 수업 중에 전공 책을 보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나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한다. 수강 신청 때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오전 9시 수업을 신청했는지 모르겠다. 높은 학점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지겨움을 이겨내고 수업에 집중해야만 한다. 지겨움을 털어낼 수 있는 음악과 함께 다시 학구열을 올려보자.

Gimme Gimme - Johnny Stimson

지루함과 힘겨운 싸움을 하는 나의 마음은 모르고 자신은 공강이라며 놀러 가자는 친구의 메시지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같이 우리를 유혹하는 첫 번째 추천곡이다. 한 번쯤은 수업을 빠뜨리고 나와도 별문제 없을 것이라는 계속되는 친구의 달콤한 속삭임에 마음이 점점 흔들리는 모습을 표현한 듯한 곡이다. 익살스럽게 연주되는 베이스는 마치 나의 상황은 모른 체 자신은 공강이라 마냥 신난 친구처럼 다가온다. ‘Gimme Gimme'라는 가사가 반복되면서 점점 애간장이 타는 모습을 표현하는 듯하다. 곡 후반부 하이라이트에서 기존 보컬 뒤쪽으로 애드리브가 더해지면서 깊어지는 고민 속에서 집중력을 잃어가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I Don't Want To Know - Sigrid

우리가 이 수업을 듣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정말 배우고, 공부하고 싶던 분야라서 일까. 사실 그저 졸업 학점을 채우고 싶어서,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라서, 학점을 잘 준다는 소문을 들어서 등 다양하고 현실적인 이유가 더 많을 것이다. 마치 오늘의 두 번째 추천곡 제목처럼 “딱히 우리는 수업의 내용을 알고 싶은 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차분한 곡의 전개는 약간은 몽롱한 상태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는 파워풀한 보컬을 가진 Sigrid도 이 곡에서는 힘을 빼, 몽환적이면서 나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피아노의 연주와 잘 어우러진다.

 

I Could Get Used To This - Becky Hill, WEISS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분명 지난 학기에도 오전 수업을 신청했다가 수강 취소를 했던 기억은 잊고,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우리가 어리석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업을 듣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학생들이 이번에는 어떻게든 휴학이나 수강 취소 없이 한 학기를 마무리하려고 애쓰는 모습 같은 세 번째 추천곡이다. 일어나기 힘든 오전 수업 혹은 공강 시간 없는 연강의 시간표를 후회하면서도 곡의 제목처럼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다짐하는 우리를 나타내는 듯하다. 밝은 분위기의 비트와 전자음과 대비되는 애절함이 묻어나는 보컬과 마냥 밝지만은 않은 피아노 사운드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Five Minutes - Her

꾸벅꾸벅 졸면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수업. 강의실 벽면에 걸린 시계를 보니 이제 단 5분이 남은 강의. 마지막 남은 정신력을 끌어 교수님의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라는 말을 듣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지루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몽롱함에 취해있는 느낌을 전해주는 몽환적이면서도 독특한 바이브의 네 번째 추천곡이다. 마치 감정이 배제된 듯한 보컬과 반복적으로 연주되는 기타 리프, 그리고 한 음씩 길게 연주되는 신스 연주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서서히 빠져들게 만드는 독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얼마 남지 않은 강의에 정신을 가다듬으려 하지만 자꾸만 눈이 감기는 강의실 속 학생들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Hear Out Battle Cry - Redlight King, The Sonic Hijackers

지루함과 잠에 굴복해서 낮은 학점 혹은 학사경고를 받아버리고, 졸업요건을 채우지 못한 지난 학기의 실수를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처럼 다가오는 마지막 추천곡이다. 어떻게든 이 강의에서 집중력을 유지해서 ‘A+’와 함께 올해는 꼭 졸업하겠다는 다짐처럼 강렬한 사운드와 백업 코러스가 인상적인 곡. 일렉기타의 리프는 더는 학기를 연장할 수 없다는 비장함을 보여주고, 훅에서의 ‘포기란 없다’는 가사와 함께 울부짖는 보컬은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 같다. 곡 중간중간 나오는 함성소리는 이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준다. 강의 중에 정신을 잃어버리고 깜빡 졸게 되는 스스로의 나약한 의지를 다잡을 때 들으면 최고인 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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