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은 태안의 푸른 바다
되찾은 태안의 푸른 바다
  • 신동길 기자
  • 승인 2022.05.17 14:20
  • 호수 149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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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기름 유출 사고 15년
▲ 푸른 태안 바다가 평화롭게 보인다.
▲ 푸른 태안 바다가 평화롭게 보인다.

Prologue
15년 전 겨울,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은 태안 바다와 생태계, 그리고 주민들의 마음까지도 검게 물들였다. 전례 없는 규모의 해양 오염 사고였다. 그럼에도 전국에서 모여든 123만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에 태안은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갔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태안 주민들과 생태계는 당시의 아픔을 씻어냈을까. 기자는 충청남도 태안을 찾아 태안 기름 유출 사고(이하 유출 사고) 15년 후의 모습을 살펴봤다.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기억
기자는 유출 사고의 자세한 경과와 극복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태안에 있는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이하 기념관)을 방문했다. 유출 사고 10주년을 맞아 지어진 기념관에서는 유출 사고에 대한 상세한 설명부터 태안과 서해안의 당시 상황, 유출 사고 극복 과정 등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었다. 입구에서 만난 김병철(66) 해설사와 함께 들어간 기념관 내부는 당시 태안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유출 사고는 2007년 12월 7일 ‘삼성중공업’의 크레인선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가 충돌하며 발생했다. 이로 인해 당시 총 1만 2천여 ㎘의 원유가 유출됐고, 375km의 해안선이 오염됐다. 유출 사고 발생 이전부터 태안에서 자영업을 하던 이경태(가명·64) 씨는 “속보를 보고 밖에 나가봤더니 바다가 완전히 검은색으로 물들었고, 기름 냄새가 코를 찔러 잠시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사고 초반에는 방제복과 방제 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원유에서 나오는 유해물질과 냄새를 완벽히 막을 수 없었다. 방제복도 제대로 차려입지 못하고 바다에 나갔던 이 씨는 “기름 냄새로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지만,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기름을 무작정 밖으로 퍼냈다”고 전했다. 해양 오염이 생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태안 주민들은 본인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검은 바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기념관에서는 당시의 자원봉사자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 기념관에서는 당시의 자원봉사자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김 해설사를 따라 걷다보니 발견한 기념관의 오른쪽 벽에는 자원봉사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 해설사는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에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유출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총 123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을 찾았다. 현장에서 직접 기름을 걷어내는 봉사도 있었고, 부족한 흡착포를 지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헌 옷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 해설사는 “유출 사고가 난 뒤로 많은 주민이 절망에 빠졌는데,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들과 조금씩 깨끗해져 가는 바다를 보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자원봉사자들과 태안 주민들의 노력 속에 바다는 점차 푸른 빛을 되찾아갔다. 

 

제 색을 찾은 태안의 바다
태안의 지금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던 기자는 기념관을 나와 건너편에 있는 만리포 해수욕장을 방문했다. 유출 사고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았으리라 생각한 기자의 눈 앞엔 만리포 해수욕장의 청록색 바다만이 펼쳐졌다. ‘죽음의 바다’라는 오명까지 붙여졌던 이곳이 제 역할을 찾은 것이다. 계속해서 해수욕장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하얀 새들과 푸른 미역만이 있을 뿐. 15년 전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 맑은 바다 덕에 푸른 해조류가 선명히 보인다
▲ 맑은 바다 덕에 푸른 해조류가 선명히 보인다

 

단순히 외관만 나아진 것이 아니다. 충남연구원에서 발표한「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 후 10년 동안의 충청남도 해안환경 변화」에 따르면, 태안 해변의 잔존 유징(지하에 석유가 매장된 상황을 나타낸 징후)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태안의 어패류 오염도도 유출 사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그 결과, 태안은 2016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으로부터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국제적 기준에서도 유출 사고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인정받은 셈이다.


홀로 만리포를 둘러보던 기자의 귓가에 몇몇 관광객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지인들과 이곳을 찾은 관광객 현금자(가명·63) 씨는 “이전에는 태안에 가기 조금 껄끄러웠지만,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이곳의 바다와 생태계가 많이 회복된 것 같아 오게 됐다”고 방문 이유를 밝혔다. 휴가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태안을 찾았다는 최정준(43) 씨는 자녀들에게 태안의 안타까운 사고와 그 극복과정을 알려주고자 태안으로 왔음을 전했다.


관광객이 다시 태안으로 찾아오며 어두웠던 태안 주민들의 안색도 밝아졌다. 만리포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연주(가명·47) 씨는 “코로나19 유행 이전만 해도 관광객을 조금씩 회복해가는 추세였다”며 태안의 회복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삶의 터전을 잃었던 어민들
태안의 바다가 다시 푸르러지면서, 멈춰있던 어민들의 삶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기자는 취재 중 우연히 들른 한 마을에서 양식업을 하는 정문식(가명·70) 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몇십 년 동안 양식업을 했지만, 이와 같은 사고는 처음 겪어봤다”면서 “손 쓸 틈도 없이 검게 물든 양식장과 전복들을 보니 망연자실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그 이유로 양식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유출 사고 이후 대부분 빚더미에 앉았다. 정 씨는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양식업 특성상 대출을 받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비용을 갚지 못한 상황에서 유출 사고가 발생해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정 씨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본 기자의 눈에 비로소 길 한 켠에 방치된 양식 탱크가 눈에 밟혔다. 태안의 자연은 15년 전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민들을 힘들게 한 것은 단순히 바다의 오염만이 아니었다. 정 씨는 유출 사고 이후 태안의 해산물에 대해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박히게 됐다며 “과학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음에도 이전보다 태안 해산물을 찾는 사람이 적어졌다”고 말했다. 해양 오염으로 인한 손실 이외에도 태안 바다를 향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에 의한 2차 피해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점점 줄고 있다. 충남연구원은 사고 직후 60%에 육박했던 부정적 인식 비율이 2016년에는 39%까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전례 없는 해양 오염과 국민의 의심 속에서도 태안 어민들은 줄곧 바다에 나갔다. 한 쪽에서는 어민들이 생선을 말리고 있었으며 반대편에는 출항을 대기하는 어선들이 보였다. 그 모습은 15년 전 유출 사고발생 상황을 아무도 모를 정도로 매우 평화로웠다. 어민들의 아픔과 눈물만 가득했던 어촌은 다시 소중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바다를 지키기 위한 노력
‘제2의 태안 유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 울산과 광양, 대산에 ‘광역방제지원센터’(이하 방제센터)를 설립했다. 그 중 대산 방제센터는 태안과 서산뿐 아니라, 인천과 평택, 군산과 보령에서 발생하는 해양 오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자는 해양 오염을 막기 위한 노력을 알아보기 위해 만리포에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대산 방제센터로 향했다. 

▲ 멀리서 봐도 거대한 방제센터의 모습이다.
▲ 멀리서 봐도 거대한 방제센터의 모습이다.

 

태안해경 임승일(55) 방제계장의 도움을 받아 들어간 방제센터는 면적 1731m2, 높이 약 11m로 매우 거대했다. 그리고 그 내부는 수많은 방제 물품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방제센터는 사고 발생 시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방제 물품을 전달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있었는데, 이론상 반나절이면 방제 물품을 전국에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임 계장은 “당시 즉각적으로 사고를 수습하지 못해 피해가 더 커졌다”며 빠른 대응을 통해 해양 오염 사고의 피해를 줄이고자 방제센터를 구축했다고 취지를 전했다.


이곳엔 유흡착재 35t을 포함해 개인보호구 약 2만 세트, 오일펜스와 동력 캐리어, 이송펌프 등 효과적인 방제 작업을 위한 도구도 여럿 있었다. 방제센터는 기름 유출을 비롯해 포괄적 해양 오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한 곳으로 설계됐기에, 다양한 상황에 쓰일 수 있는 장비가 비치돼 있었다. 하지만 장비의 수량에 비해 관리 인원은 조금 적어 보였다. 많은 장비를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임 계장은 “방제센터 내부를 기계화해 적은 인력으로도 충분히 필요한 물품을 꺼낼 수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임 계장이 선반에 부착된 화면을 누르자, 선반이 좌우로 열려 쉽게 장비를 꺼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기자는 방제센터가 단순히 많은 양의 방제 물품을 쌓아 놓은 곳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신속한 대응을 위한 곳이었음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 방대한 양의 방제물품이 가득 들어차 있다.
▲ 방대한 양의 방제 물품이 가득 들어차 있다.

 

방제센터에서는 비정기적으로 방제 물품 이용방법과 해양 오염 사고 예방·방지를 위한 교육도 진행한다. 임 계장은 “방제 물품이 있어도 사용 방법을 모른다면 쓸모없게 된다”며, 민관 차원의 다양한 교육을 주민들과 관련 기업들에 진행하고 있음을 전했다. 기자에게 모든 장비를 세세하게 설명하는 임 계장의 모습에서는 두 번 다시 바다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났다. 이들의 노력에 화답하듯, 전국의 해양 오염 사고와 오염물질 유출량은 점차 줄고 있다.

 

Epilogue
바다 해(海)라는 한자엔 어미 모(母)가 들어간다. 수많은 생명의 터전인 바다는 예로부터 어머니로 비유되곤 했다. 태안의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바다와 어머니는 닮은 구석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15년 전 기름 유출 사고로 어머니와 같은 바다를 잃었던 태안 사람들은 누구보다 바다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바다로 향했고, 지금까지도 바다를 아끼며 사랑하고 있다. 지금도 푸르게 빛나는 태안의 바다는 이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되찾았다.

신동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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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gshin2271@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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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ter 2022-05-18 00:37:17
사랑해요 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