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면 밝아지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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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다운 기자
  • 승인 2022.05.31 13:43
  • 호수 14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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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안내견 학교

Prologue
2020년 11월, 잠실의 한 대형마트 소속 직원이 ‘퍼피워킹(안내견 사회화 훈련)’ 중인 강아지와 봉사자의 건물 출입을 막는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으로 큰 질타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첫 안내견이 탄생한 지도 벌써 28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모든 이들이 안내견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한 것은 아닌 듯하다. 여기, 안내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바꾸고 시각장애인의 사회 활동을 돕기 위해 힘쓰고 있는 단체가 있다. 평범한 강아지가 시각장애인의 어엿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곳, 바로 안내견 학교다. 

▲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 전경이다. 

 

안내견의 자격
기자는 안내견을 직접 만나 이들의 훈련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세계안내견 협회(IGDF)의 정회원 학교인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이하 안내견 학교)로 향했다. 이곳은 안내견의 교배 및 출산부터 은퇴 이후까지 전 일생을 함께하며 이들을 필요로 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을 무상으로 분양하고 있다. 

▲  내부 견사에서 견공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안내견 학교의 첫인상은 한 마디로 ‘강아지를 위한 천국’이었다. 단층으로 된 학교 건물 외부에는 강아지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한쪽에는 계단 오르기와 경사로 보행을 연습할 수 있는 시설물이 자리했다. 내부 견사는 강아지별로 구역이 나뉘어 있어 넓은 공간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는 견공들을 볼 수 있었다. 

 

평화로운 광경을 넋 놓고 지켜보던 기자는 한 가지 특별한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곳에 모인 강아지 모두가 똑같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를 신규돌(54) 훈련사에게 묻자 그는 안내견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자격요건을 설명했다. 안내견으로 키워지는 견종은 리트리버종 중에서도 기질과 품성을 고려해 사람과의 관계를 맺기에 적합한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그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내견의 90%가 래브라도 리트리버라고 전했다. 

▲ 학교 안 잔디밭에서 견공들이 훈련사를 둘러싸고 있다.


이곳에서 28년간 근무했다는 신 훈련사는 “초창기에는 삽살개, 진돗개 같은 토종 견종을 대상으로 안내견 훈련을 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품종은 한 명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보니 번식담당자, 퍼피워킹 담당자, 훈련사, 시각장애인 등 여러 사람을 만나 생활해야 하는 안내견의 특성에는 맞지 않았다”며 실패 요인을 전했다. 


그렇다고 모든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안내견으로 길러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내견 학교에서는 기존의 안내견 중에서도 온순하고 학습 능력이 높으며 건강한 강아지 간의 교배를 통해 출산한 강아지를 안내견으로 훈련하고 있었다. 견사의 강아지 중 이름이 ‘ㅎ’으로 시작하는 견공들은 모두 외국에서 들여온 강아지였다. 교배 시 근친도를 낮추고 유전병을 방지하기 위해 세계안내견 협회 소속 국가들과 우수한 기질의 강아지를 교류한 것이다.

 

누군가의 빛이 되기 위해
안내견이 되기에 적합한 유전자를 타고난 강아지들은 생후 7주부터 14~16개월이 될 때까지 외부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며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퍼피워킹이라고 부른다. 그저 강아지가 좋아 퍼피워킹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윤지선(가명·43) 씨는 “이 일을 시작한 것이 후회될 때도 있었다”며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사회화가 이뤄져야 하는 중요한 시기의 안내견을 맡았다는 책임감에 몸이 아파도 산책을 쉬지 못했고 모든 일정을 퍼피워킹 일과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책임감만큼 보람도 크고 행복하다”며 퍼피워킹을 계속하겠다는 그를 보니 시각장애인 안내견에 대한 애정이 기자의 생각보다 더 큰 것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일반 자원봉사자의 가정에서 퍼피워킹 단계를 마친 강아지는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른 훈련견과 함께 지내며 외부 환경에서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방법을 배운다. 훈련은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이뤄진다. 때마침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안내견들이 외부 훈련을 나가는 시간이었기에 그 과정을 동행할 수 있었다. 외부 훈련은 여러 마리의 강아지들이 차에 타서 훈련 장소로 함께 이동한 후 1마리씩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인도와 건물 안을 보행하는 방식이다. 


강아지들이 훈련받을 장소는 분당 수내역 ‘롯데백화점’ 인근이었다. 유동 인구가 많고 복잡한 지하철과 백화점에서 과연 훈련이 잘될 수 있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첫 번째 훈련생 ‘참이’는 기자의 우려가 무색하게 “문 찾아”라는 훈련사의 말에 사람보다도 능숙히 출입구를 찾았다. 신 훈련사를 출구 앞으로 이끈 참이는 가만히 서서 그를 바라봤고, 그는 클리커로 ‘딸깍’ 소리를 낸 후 참이에게 간식을 줬다.


생소한 광경에 기자가 어리둥절해하자 그는 클리커를 ‘칭찬 도구’라 설명했다. ‘딸깍’ 소리와 함께 간식을 줌으로 강아지가 특정 행동을 하면 긍정적인 경험이 온다는 것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그는 클리커를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훈련사의 목소리 톤이 항상 일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강아지가 칭찬의 표시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기구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그 설명을 들은 기자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훈련하기 위해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 기자가 안내견 참이를 의지해 걷고 있다.

 

참이와 함께 길을 걷다 보니 장애물이 없는 평탄한 길이 나왔다. 그러자 신 훈련사는 기자에게 안대를 쓰고 참이의 안내를 따라보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는 안내견의 움직임을 촉감으로 읽을 수 있도록 강아지의 몸통 전체를 감싸는 하네스의 손잡이와 목줄을 한 손으로 잡고 안대를 쓴 후 걸었다. 눈앞에 뻥 뚫린 공터가 있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음에도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참이는 이런 기자를 안심이라도 시키듯 종아리 옆에 붙어 천천히 앞으로 안내했다. 1분 정도 눈을 가리고 걷는데도 기자에게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자 점차 참이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주춤거렸던 발걸음은 점차 보폭이 넓어졌고, 안내를 쓰고 있음에도 앞이 보이는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안내견, 혹은 그 이상의 삶
퍼피워킹을 마친 강아지가 안내견이 되기 위해서는 훈련소로 돌아와 한 달, 3개월, 6개월이 되는 시기에 각각 한 번씩 평가를 치른다. 참이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평가를 무난히 통과해 그 다음 주에 마지막 시험을 남겨두고 있었다. 참이가 남겨둔 마지막 시험은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데, 첫날은 음식부터 다른 강아지까지 여러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용인 시내의 복잡한 재래시장을 지나가야 하고, 둘째 날은 복잡한 분당 서현역에서 에스컬레이터와 지하철을 잘 타고 내려야 한다. 

 

▲ 참이는 능숙하게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탄다.

 


강아지가 긴 훈련 과정과 세 번의 시험을 통과해 안내견이 될 확률은 30%뿐이다. 기자가 “참이가 꼭 시험에 합격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하자 그는 이에 동감하면서도 훈련사들이 안내견 시험의 결과로 강아지의 삶 자체를 성공이나 실패라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강아지들을 분양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고, 퍼피워킹을 맡았던 가정이 다시 키우고 싶어 하면 그 가정으로 돌아가 반려견으로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안내견이 되지 못하면 그들의 삶이 좌절된 것이 아닐까 잠시라도 걱정한 것이 안내견을 단지 수단으로만 본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안내견 학교는 2000년 8월 생을 마감한 ‘토람이’를 시작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안내견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견공들을 추모하기 위해 온라인 추모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 추모 게시판에는 그들의 삶을 함께한 시각장애인들을 비롯해 많은 일반인의 추모 댓글이 올라온다. 지난달 28일에는 ‘세계 안내견의 날’을 맞아 안내견 학교 뒤편에 작은 추모공원이 조성됐고, 추모식이 열렸다. 


안내견은 생의 마지막과 그 이후까지도 안내견 학교 훈련사들의 보살핌 아래에 있었다. 자신이 훈련한 강아지를 모두 기억하는 안내견 학교 훈련사들은 견공들의 선생님이자 부모이기도 했다. 이들의 관계가 이토록 돈독해질 수 있었던 것은 훈련사들이 강아지를 진심으로 대한 결과일 것이다.

 

Epilogue
안내견 학교의 수많은 견공 중 교육 과정을 모두 통과하고 안내견이 되는 경우는 매년 12~13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안내견이 되는 것과 상관없이 안내견학교를 거친 강아지들의 삶은 그 어떤 반려견의 삶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의 성격을 꼼꼼히 따져 다리를 놓고, 반려견으로 살게 된 강아지의 주인도 까다롭게 결정하는 안내견 학교 훈련사들 덕분일 것이다. 기자는 안내견 학교가 시각장애인 안내견만을 육성하고 분양하는 학교가 아닌, 사람과 동물 간의 바람직한 관계가 무엇인지 세상에 알리는 시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두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윤다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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