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보석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보석
  • 유영훈∙박준정 기자
  • 승인 2022.09.06 14:54
  • 호수 149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염전과 소금공장

Prologue
소금은 우리 삶에서 뺄 수 없는 필수품이다. 인류가 이용해온 가장 오래된 조미료 중 하나로 위액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염산을 만들고 신체의 여러 생리적 기능을 보조한다. 체내로 섭취되는 소금이 부족하면 신장병, 저혈압, 간 기능 저하가 발병할 수 있고 심하면 혼수상태까지 빠질 수 있을 정도로 소금은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은 이런 소금을 어떻게 얻어 왔을까. 기자는 우리의 밥상과 생활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소금을 파헤치기 위해 염전과 소금공장으로 취재를 떠났다.

 

잊히고 사라지는 염전
기자가 소금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염전에서 생산하는 천일염이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천일염 산업의 현황과 정책과제」연구에 따르면, 국내 천일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산 천일염보다 나트륨 함량도 낮고 더 풍부한 미네랄을 가졌다. 기자는 서해안 갯벌에서 만들어지는 천일염을 만나기 위해 인천 영종도의 ‘금홍염전’을 찾았다. 차를 타고 영종도로 이동하는 길, 기자는 최근 자주 내렸던 비로 바닷물이 증발하지 않아 소금 생산이 중단되진 않을까 우려됐다. 바다의 짠 내음이 창가를 통해 조금씩 느껴질 때쯤, 기자는 염전 주변에 다다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금 생산 중단은 기자의 괜한 걱정이었다. 기자가 차에서 내리자 염전 체험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관계자가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취재를 위해 만난 영종공원사업단 공원녹지팀 김민주(30·가명) 주임은 기자에게 금홍염전은 폐염전이라 알렸다. 상업용 소금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직 소금을 생산하며 소금 체험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김 주임은 천일염 생산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염전에서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바닷물을 가두고 증발지에서 물을 증발시켜 물의 염도를 올린다. 그리고 염수를 계속 증발시키며 천일염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소금이 흙과 불순물에 섞이지 않도록 어두운 타일로 염전 바닥을 까는데, 어두운 타일은 흰색의 소금이 잘 보이게 하며 태양열 흡수에도 효과적이다.


그러나 기자가 전망대에서 본 염전은 도자기나 옹기로 돼 있지 않았기에 김 주임에게 지금은 도자기나 옹기 타일을 쓰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과거에 항아리나 옹기 같은 도자기 파편으로 타일을 깔아 사용했지만 지금은 제작단가와 처리의 용이함을 이유로 PVC 장판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염전 가까이 다가가 소금을 만들고 있는 장면을 자세히 보니 여름에 내린 많은 비로 인해 소금꽃(소금이 만들어지기 전 해수 위로 소금 성분이 뜨는 현상)이 피어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군데군데 소금 결정이 만들어진 모양이 보였다. 바닷물 아래에 소복이 쌓인 소금 결정은 마치 겨울에 내린 눈처럼 느껴졌다.


과거에 3개의 부지를 가지고 있던 금홍염전은 영종도 개발로 점점 축소됐다. 더 이상 상업용 염전의 역할을 하진 못하지만, 아직 전성기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군데군데 사용하지 않은 곳엔 해초가 자라기는 했어도 그래서 염전은 천일염의 역사를 전하기 위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소금 채취를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이 바닷바람에 빛바래진 모습은 염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  소금이 만들어지고 있는 염전의 모습이다.
▲ 소금이 만들어지고 있는 염전의 모습이다.

 

보고 또 봐도 흔들림 없는 죽염
천일염 생산 과정을 지켜본 기자는 문득 시중에서 많이 쓰이는 죽염의 제조과정이 궁금해 죽염 공장을 찾았다. 천일염을 죽통에 넣고 고열로 구워 만들어지는 죽염은 살균과 해독 기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치약이나 약재로 많이 쓰인다. 이 외에도 간장게장, 샴푸, 전통주 등 다양한 곳에 활용되고 있어 소금계의 팔방미인이나 다름없다. 


경남 함양군에 위치한 죽염 공장 ‘인산죽염’은 서울에서 5시간, 버스 하나 다니지 않는 지리산 자락 깊숙한 곳에 있었다. 택시를 타고 산길을 겨우 달려 그곳에 도착하자, 매섭게 쏟아지는 장마철 빗줄기를 무시하듯 뜨거운 열기가 기자를 반겼다. 


건물에 들어가니 직원들은 죽염 제조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기자는 그동안 죽염이 단순하게 대나무에 천일염을 넣어 굽기만 하면 만들어진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장 내부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공장은 죽염을 굽는 가마 작업장, 1차 작업장, 2차 작업 및 상품화 작업장과 죽염 연구실로 이뤄져 있었다. 인산죽염 오창호(55) 과장은 대부분 죽염의 제조 과정이 소금을 단순히 대나무에 넣어서 굽는 제조과정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보면 생각이 바뀐다며 “주재료인 서해안 천일염, 땔감으로 쓰이는 토종소나무, 송진 등 원료를 구하는 것부터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 가마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된 죽통이다.
▲ 가마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된 죽통이다.

 

오 과장을 따라 작업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대나무를 굽는 거대한 통들 맞은편에서 직원들이 왕대나무에 천일염을 다져 넣고 있었다. 오 과장은 “기계로 자동화하면 죽통 내부의 천일염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고 터질 위험이 크다”며 “사람이 수작업으로 다져야 대나무의 유황정(섭취할 수 있는 식이유황 성분)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나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고난도 작업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고 기자는 소금 제조 과정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투입됨을 느꼈다.


실제로 죽염은 천일염의 500배나 되는 가격이며 최고급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보다도 비싸다. 이는 그냥 책정되는 것이 아니다. 까다로운 재료와 청정 장소 외에도 대나무가 잘 구워지게끔 일정한 고열 유지는 기본, 미량의 약성 분자와 미네랄이 흡인될 수 있도록 통의 완벽한 밀폐가 이뤄져야 한다. 조건을 모두 갖췄다면 소금을 굽고 식힌 후 분쇄해 다시 대나무에 넣는 과정을 한 달 동안 9번 반복해야 한다. 정성 들인 과정을 모두 지켜본 기자는 괜스레 죽염이 달라 보였다. 죽염이 소금계의 팔방미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정성 가득한 직원들의 노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직원들이 생산된 죽염을 포장하고 있다.
▲ 직원들이 생산된 죽염을 포장하고 있다.

 

후대로 이어지는 전통 토염
천일염이 도입되기 이전 우리나라의 고유 소금 제조 방법은 토염법이었다. 바닷물을 끓여 만든 소금인 토염은 저렴한 생산 원가와 짠맛이 강하다는 장점을 가진 천일염에 조금씩 밀렸다. 이러한 토염을 되살리고 있는 이가 있다는 소식에 기자는 서둘러 울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대째 명맥을 잇는 토염 명인 조희조(62) 씨가 운영하는 ‘울진토염’은 드넓은 동해를 끼고 있었다. 현대식 건물처럼 돼 있는 외관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관광객들을 위한 토염 체험장과 함께 전통적인 토염 생산 시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업장 안으로 들어간 기자는 죽염 생산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작업실에서는 작업자들이 갈퀴를 붙인 밀대를 사용해 막 탈수된 소금에서 불순물을 거른 뒤 잘 건조되도록 펼치고 있었다. 


울진토염은 상대적으로 불순물이 적은 해저 심층수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적의 토염 생산지로 동해를 골랐다는 조 명인은 “동해는 한류성 해류와 난류성 해류가 겹쳐 조경수역이 형성돼 좋은 염수가 생성된다”며 “일정한 염도 유지가 가능할 뿐 아니라, 울진 쪽에는 해양심층수가 분포돼있어 청결하면서도 고밀도의 영양염류를 가진 바닷물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토염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져온 청정 바닷물을 황토가 깔린 토판에 뿌리고 말리기를 몇십 번 반복해 소금기 가득한 황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바닷물을 뿌려 미네랄이 풍부하고 염도를 높인 염수 만든 후 가마솥에서 오랜 시간 끓인 뒤 건조해줘야 완성된다.


토염은 천일염에 비해 공정 과정이 길고 생산량이 적지만 칼륨은 7배, 칼슘은 4배, 마그네슘은 2.5배 많다. 기자는 설명을 듣는 도중 조 명인에게 토염으로 우린 차를 건네받았다. 한 모금 마셔보니 소금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적당한 감칠맛이 덕분에 깔끔히 느껴졌다. 

 


전통 소금을 널리 알리고 있는 그의 다음 목표는 해외 수출시장에 우리나라 토염의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덧붙여 토염의 인지도를 높이고 싶다던 조 씨는 “우리 선조들의 소금 제조 방식으로 만들어진 토염을 상품화하면 전통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기자는 전통 제작법을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인의 끝없는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를 마친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온 기자는 축소되고 잊혀가는 염전에서 무상감을, 죽염공장에서는 좋은 소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업자들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토염 작업장에서는 전통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많은 시간 인내하는 장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존경심을 품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노력을 품은 소금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였다.

▲ 조 명인이 가마 속 토염을 살피고 있다.
▲ 조 명인이 가마 속 토염을 살피고 있다.

 

Epilogue

어염시수(魚鹽柴水)라는 말이 있다. 생선, 소금, 나무, 물이라는 뜻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기자는 취재를 하며 소금은 과거부터 우리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물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소금을 뜻하는 한자어 소금 염(鹽)은, 가마솥에서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모습에서 유래됐다. 기자가 만난 모든 이들은 인내의 과정에서 소금을 만들고 있었다. 이처럼 끝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소금은 ‘하얀 금’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명품이다. 우리의 다양하고 귀중한 소금이 국내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