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연구 결과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역량이 부족하단 결과가 나왔다. OECD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역량’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연구 과정에서 실시된 역량 검사에선 우리나라 학생 정답률은 25.6% 수준이었으며, 이는 OECD 국가의 평균인 47.4%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미흡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라 진단했다. 일명 ‘정보의 홍수’로 불릴 만큼 점점 확대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학생들이 적절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10대와 20대의 미디어 사용량은 이미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청소년 미디어 이용 실태 및 대상별 정책대응방안연구:10대 청소년」에 따르면 청소년 응답자의 61.5%가 하루 평균 3시간 이상을 스마트폰 이용에 할애한다. 20대의 스마트폰 이용률도 10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1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대는 일주일 동안 평균 29.5시간 동안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90.8%에 달하는 대학생이 SNS를 이용하고 있다.
미디어 교육, 여전히 걸음마 단계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를 통한 정보와 콘텐츠에 적절히 접근해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미디어를 활용해 의미 있는 정보과 문화를 생산 및 전달할 수 있는 능력과 미디어를 윤리적으로 책임 있게 이용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서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개정 교육부에서 공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미디어 리터러시와 관련된 디지털 교육이 포함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문가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더욱 내실 있게 하기 위해선 이를 이끌만한 협의체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이같은 협의체가 부재한 상황이라 지적한다. 부산어린이창의교육관 이성철 교육연구사는 『한국기자협회보』에서 “교육과정 개정은 학문적 지식과 교육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대상자의 수준과 관심, 시대적 변화 등을 고려하여 진행해야 하는 고도로 전문적인 일”이라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위한 제대로 된 숙의와 토론의 기회를 마련하는 협의체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국내에선 언론진흥재단이나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시청자미디어센터와 같은 기관 단위의 교육이 존재하지만, 체계성이 부족하단 문제가 있다. 기관별 교육 내용이 일부 중복되거나 기관 간의 협력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대학 김지원(커뮤니케이션) 교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 교육 연구엔 학문 간의 학술 협력이 부족하다”며 “미디어와 이용자에 집중하는 미디어학 관점과 미디어 교육의 학습체계를 구성하는 교육학 관점이 함께 관련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대학에서도 미디어 교육이라고 할 만한 강의가 교육 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다. 숙명여대와 한양대의 경우 각각 컴퓨터 및 스마트폰과 관련된 디지털 교육이 존재하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 대학의 경우엔 필수 및 선택 교양 모두에 관련 과목이 부재한 상황이다. 한국체대는 선택 교양에 관련 과목이 개설돼 있지만, 이 또한 필수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미디어 속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분별하고, 알고리즘에 따른 미디어 편식을 예방하기 위해선 미디어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숙명여대 심재웅(미디어) 교수는 “청소년들이 여러 미디어 속 채널에서 자신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판단력이 미숙한 청소년들은 미디어 속 허위 정보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선택 아닌 필수 된 ‘미디어 리터러시’
사회 의제에 활발히 참여하는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미디어 교육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단 목소리가 있다. 김 교수는 “미디어를 통해 습득한 편향적인 정보로 편향된 지각이 만들어질 위험이 크다”며 “이러한 지각은 잘못된 선택과 행동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효과성은 이미 입증됐다. 지난 2017년 『한국방송학보』가 발표한 ‘뉴스 리터러시가 의사소통 역량과 공동체 역량에 미치는 영향’에서 뉴스 활용 교육을 받은 집단이 뉴스를 더 비판적으로 해석한단 결과가 나왔다. 심 교수는 “어릴 때부터 미디어 교육에 노출돼야 미디어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자연스레 고민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청년들도 미디어 교육 필요성에 공감
학생들도 미디어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짜 뉴스와 같은 부정확한 정보들을 학습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냔 질문에 54%가 ‘매우 그렇다’, 32%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무분별한 미디어 모방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미디어 교육이 얼마나 필요하냔 질문에 57%가 ‘매우 그렇다’, 25%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서울시립대 유하늘(영어영문·2) 씨는 “4차 산업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속해서 미디어를 접하고 있는 만큼, 미디어 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 교양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익대 박찬혁(경영·3) 씨도 “수용자가 비판적인 사고를 견지할 수 있도록 미디어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며 “알고리즘의 원리가 편향적 지식을 이끌 수 있단 점 또한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설문 답변자는 대학보다도 초·중등에서의 교육을 보다 강조했으나 교육의 부재에 대한 문제점과 교육의 필요성은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더해 미디어 교육이 청소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각 세대와 계층에 적합하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전 연령의 전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미디어 교육을 위한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가 만들어져, 국가와 학교와 가정이 효과적인 교육 방안을 함께 개발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거짓말과 그것을 쉽게 믿는 성질이 하나가 되어 여론을 만들어 낸다’는 말을 남겼다. 미디어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태도는 위험하다는 뜻이다. 시대에 발맞춘 교육을 수행하는 교육기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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