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뒤에 숨겨진 자연의 보물
전쟁 뒤에 숨겨진 자연의 보물
  • 강서영 기자
  • 승인 2022.11.22 17:13
  • 호수 14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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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생태

Prologue
약 70년 전 치열한 전쟁이 펼쳐졌던 군사접경지역은 현재 다양한 동물이 뛰어다니는 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군사 경계 지역으로 갈수록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해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천혜의 자연이라는 말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비무장지대(DMZ)는 어떻게 생태를 회복할 수 있었을까. 민간단체와 공공기관은 DMZ의 자연을 사료로 기록하고 자연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기자는 보전된 생태계와 연구를 직접 확인하고자 DMZ의 자연을 찾아 생태 조사를 따라갔다.

 

생태계의 보고를 탐사하러 가는 길

기자는 오전 8시 파주 DMZ 생태연구소를 방문해 취재를 시작했다. 비무장지대로 탐사를 떠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10여 명의 민간인 전문가가 모였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자체 정규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이 향하는 DMZ와 임진강 유역은 특히 철새들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는데, 다른 하구 지역과는 달리 사람의 접근이 어려워 독특한 자연생태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휴전 국가이자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 속 방조제 없이 밀물과 썰물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접경지역은 먹이사슬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순적이게도 인간의 경계가 가장 지피는 곳에 수많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많이 서식하는 것이다.


기자에게 연구소란 각종 현미경과 실험 도구, 하얀 가운으로 가득할 것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생태연구소 내부는 친숙한 분위기였다. 생태연구소답게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엔 식물도감이 빼곡하게 꽂혀있었고, 다양한 식물이 소장실을 에워쌌다. 토양 냄새가 맴도는 연구소 모습을 보고 두리번거리던 기자를 발견한 김승호(62) 소장은 “하나의 식물을 제외하고 길가의 야생 식물과 난 같이 버려진 식물들을 챙겨 직접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버려졌다’는 단어가 동물만이 아닌 식물에도 적용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 연구소 내 김 소장이 키우고 있는 버려진 식물들이다.
▲ 연구소 내 김 소장이 키우고 있는 버려진 식물들이다.

 

생태연구를 떠나는 인원이 모두 모이자 탐사에 앞서 간이 회의가 시작됐다. 김 소장은 민간 생태전문가들에게 “모두 2주 만에 만나 매우 반갑다”며 서두를 맺었다. 연구소의 탐사는 정기적으로 이뤄지나, 모든 인원이 한 번에 모이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은 것으로 짐작했다.


연구소는 2005년에 정식으로 출범했다. 그들의 연구로 꾸준히 쌓인 데이터는 훗날 공공기관의 연구 및 발표 자료로 쓰여 하나의 사료로 활용된다. 김 소장은 “오늘처럼 정기적으로 매주 조사하는 누적 데이터가 이제 20년 가까이 모였다”며 학술적 가치를 지닌 자료는 논문으로도 쓰인다고 말했다.

 

DMZ 철새를 보고 듣고 기록하다

미팅이 끝나고 연구소 밖으로 나오니 건물 앞에는 중형차가 주차돼있었다. 차를 타고 민간인출입통제선을 넘어 파주시 정자리 근방의 자연 일대를 조사하는 것이 업무였다. 기자를 포함한 10여 명의 인원이 등산복과 갖가지 연구 도구로 무장한 채 차에 올라탔다. 


약 20분을 이동하고 통일대교에서 신분증 검문이 이뤄졌을 때 민간인 출입 통제 지역에 방문한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효율적인 업무 분배를 위해 팀을 나눴는데, 탐사조는 교란종팀, 식물팀, 조류팀으로 나뉘었다. 교란종팀은 교란종의 자연방제에 대한 연구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DMZ 내 생태계 교란종을 조사하는 역할이었다. 식물팀은 특정 구역에서 비무장지대의 식물 성장 경과, 종류를 비롯한 전반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조류팀은 민통선의 지역들을 전반적으로 돌아다니며 철새를 관측하고 리스트에 누적 데이터를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기자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DMZ 내부를 더 깊이 관측하고 싶어 조류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차에서 내린 기자가 주변의 풍경을 돌아보니 광활한 논밭 지대가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사람이 없어 더욱 고요했던 주변을 관측하던 기자는 일명 ‘메인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김동인(67) 씨와 보조 선생님을 맡은 이은희(48) 씨를 따라갔다. 조류팀의 준비물은 철새를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소형 망원경, 생물종과 발견 위치를 기록할 차트와 펜이었다. 철새를 관측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간단했다. 선두로 길을 탐방하던 메인 선생님이 새를 포착하고 촬영해 조류의 관측 위치와 종류, 수를 외치면 곧바로 보조 선생님이 ‘조류조사 야장’이란 명칭의 차트에 리스트를 기록한다. 그 즉시 발견한 조사대원의 GPS를 기록해 조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3시간 이상 지속하는 것이다. 이 씨는 “GPS를 찍으면 내가 어느 길을 걸어왔는지 경로를 모두 기록해주기에 훗날 데이터 집계에 유용하다”고 말했다.

 

▲ 조류팀이 철새를 포착해 기록하고 있다.
▲ 조류팀이 철새를 포착해 기록하고 있다.

 

조류 관측과 청음이 어려웠던 기자도 20분 정도 지나니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2명의 선생님을 뒤따라가기도 바빴던 초보가 철새를 함께 포착하고 기록할 수준까지 된 것이다. 여름철 철새의 경우 참새, 중대백로, 멧비둘기 등이 많이 관측됐으며 도시와 산에서 보기 어려운 물총새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가 그들을 도와 기록한 철새의 위치는 주로 논, 전깃줄, 전봇대였다.

 

▲ 논 한가운데 있는 중대백로다.
▲ 논 한가운데 있는 중대백로다.

 

3시간 남짓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야장 기록은 3장이 넘어갔다. 여름철에도 평소 철새가 많이 기록되냐는 질문에 이 씨는 “지난주에는 철새의 분포 기록이 한 장 나왔다”고 답했다. 그는 “여름철엔 날이 너무 더워 동물도 지쳐서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며 “오늘은 유독 많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기록 양이 평소보다 많아도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땡볕 아래에서 오랜 시간을 걸어 지쳐있던 기자를 깨운 건 도시에서 마주칠 수 없는 다양한 생태계의 보고였다. 기자와 동행하던 김 씨와 이 씨는 비포장도로 사이 세로로 길게 늘어져 있던 ‘둠벙’을 가리키며 기자를 멈춰 세웠다. 둠벙은 농사지을 때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생태 습지를 뜻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도시가 발달해 발견이 어렵다고 한다. 기자도 농촌에서 둠벙을 발견한 경험이 없었기에 DMZ의 생태 보존력에 감탄을 표했다.


선두로 조류를 관측하던 김 씨가 돌아가자는 신호를 던진 순간 관측 조사는 마무리됐다. 이 씨는 “야장에 기록한 하루의 데이터들을 연구소로 돌아가 사진과 엑셀 파일로 정리하면 비로소 하루 일과가 끝난다”고 말했다.

 

생태계를 복원해 기억을 남기는 일

연구소에 돌아와도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부지런히 재배하고 추출한 식물과 데이터 자료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기자와 함께 조류팀에서 조사했던 이 씨는 “일과가 끝난 후 남아서 더 공부하고 싶으면 연구소에서 식물과 동물도감을 공부해 지식을 쌓는다”고 덧붙였다. 자연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 줄 모르는 이들의 열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소장은 직접 조사한 결과들이 쌓이면 “기후 변화로 인해 생물 종과 서식처, 생물군의 변화를 통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생태의 변화와 피해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가늠할 수는 없으나 이런 추세로 가게 되면 특정 생물들이 피해를 받을지 훗날 예측할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온·난대성 기후가 강화되며 북방계 식물들의 서식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 겨울 철새의 약 95%가 비무장지대에서 월동을 하나, 이들이 겨울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은 점차 줄고 있다. 김 소장에게 민간인으로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묻자 그는 “인식이 있어야 실천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의 마지막 말을 뒤로하고 생태 보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기자는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을 찾았다. 국립생태원의 5대 기후 전시관에서는 한반도의 생태계를 비롯해 세계 5대 기후(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보존하고 있었다. 연이어서 펼쳐진 5개의 기후관에는 동식물 구분 없이 사막여우, 펭귄 등이 서식하고 코알라의 주식인 ‘코림비아 시트리오도라’부터 폭포와 커피나무 등이 재현돼 있었다. 이곳을 소개한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이 중 열대관은 환경파괴로 인해 점점 사라져 가는 지구촌의 열대우림을 약 3천㎡ 규모의 온실에 재현한 공간”이라며 관광객들이 전시 관람을 통해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작은 실천과 생태 중심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국립생태원에 재현된 열대우림 폭포다.
▲ 국립생태원에 재현된 열대우림 폭포다.

 

Epilogue
1970년부터 정부는 DMZ의 생태에 관한 관심을 재차 가지며 관련 보호 정책을 내세워온 바 있다. 그 덕에 DMZ는 그 어느 곳보다 인간의 손길을 타지 않았다. 그곳은 남과 북이 경비를 돌며 서로를 견제하는 적막함이, 마찬가지로 인간과 생태계 사이에서도 서로를 건들지 않는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구가 맞닥뜨린 기후 위기로 자연과 인간은 지속 가능한 삶을 잃고 있다. 자연과 인간 사이 고요한 평화의 균열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 생태계는 연쇄적인 구조를 갖기에 한쪽이 무너지면 모두가 잠식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관망이 아닌 생태계를 지키고, 실천하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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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stzero@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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