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담은 아름다운 그림자
빛을 담은 아름다운 그림자
  • 박준정·김지원 기자
  • 승인 2023.01.03 15:24
  • 호수 14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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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Prologue
작년 통계청에서 주관한 「2021 한국의 사회지표」중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 기관 조사’에서 국회는 전 국가기관 중 가장 낮은 신뢰도를 얻었다. 미디어를 통해 비치는 국회의원들의 행동이 주된 원인이었다. 그렇기에 개그 프로그램이나 만화에서 국회가 풍자의 대상으로 흔히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른 국가기관보다 부정적인 여론을 가진 국회이지만, 오늘도 국회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은 입법 활동을 위해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이외에도 어떤 사람들이 입법 활동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 기자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국회 구성원들의 열정을 취재하고자 대한민국 국회로 향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달리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에 내리자 청동색 지붕을 가진 국회의사당(이하 본청)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수많은 취재진과 구성원으로 가득 찬 본청은 추운 겨울에도 활기를 띠었다. 기자는 지하에 있는 출입처에서 신원을 밝힌 후 출입증을 얻어 국회의원실이 있는 본청으로 들어갔다. 


기자는 653호에 있는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실(위원장: 용인시병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정춘숙)에서 김명환 비서관(31)을 만나 비서관의 업무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김 비서관은 오전 7시 40분 출근 직후 조간신문을 통해 당일의 이슈를 파악한 뒤 정 의원의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루 일정을 미리 점검한다. 그는 “돌발 변수가 많은 일이라 야근이 잦고, 일이 일률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어려움을 밝혔다. 비서관은 의원의 일정에 따라 업무가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의원실과 비서관마다 업무가 전부 제각각이다.

▲ 입법자료를 검토하는 김 비서관의 모습이다.
▲ 입법자료를 검토하는 김 비서관의 모습이다.


김 비서관은 그의 업무 중에서도 ‘의원의 말과 글’을 가장 신경 쓰고 있다. 그는 대중이 정치인을 평가할 때 말과 글이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연설문이나 축사 작성에 가장 큰 노력을 들인다고 강조했다. 김 비서관의 말을 듣고 바라본 그의 책상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수많은 국회 보도자료와 기사가 놓여 있었다. 


그가 정치를 돕는 이유는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김 비서관은 ‘국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법안이 통과됐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어린이집 학부모에게 ‘어린이집 주변 흡연으로 인한 원아 간접흡연’ 민원을 받은 후 이를 법안으로 만들어 통과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후 퇴근길 어린이집 금연 구역 표지를 볼 때마다 뿌듯함이 든다며 이러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비서관 일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가치라 전했다.


한 명의 국회의원이 원활하게 입법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10여 명의 보좌진이 밤낮으로 업무에 매달려야 한다. 기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당연한 것들이,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고민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 사소한 불편함에도 귀 기울이는 태도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 아닐까.

 

정보의 가치를 살리는 이들
김 비서관과의 만남을 뒤로한 채 국회의 본청 오른쪽에 있는 국회도서관으로 향했다. 국회의 원활한 의정활동을 위해 수많은 정보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이들을 알아보기 위 함이었다. 국회도서관은 공공도서관 기능과 더불어 의회도서관으로서 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입법·정책 정보를 제공하며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의회·법률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단순히 이곳을 독서 공간이라고만 생각해왔던 기자는 국회도서관의 숨겨진 여러 모습에 새로움을 느꼈다. 조용한 공간 속에서 여유 있게 책을 읽는 모습 대신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자는 이곳에서 일하는 여러 조력자를 만날 수 있었다. 먼저 경제사회정보과에서 만난 박진희 주무관은 의원실에서 발의하고자 하는 법안과 관련된 정보가 필요할 때 질의서를 보내면 관련 정보를 검색, 가공 후 편집해 전달하는 ‘회답’ 업무를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는 객관적인 정보 수집과 전달이 제일 중요하다. 또한 시의성 있는 주제에 대한 종합적 사실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다양한 기관에 제공하는 『팩트북』을 발간하는 업무도 맡고 있다. 그는 시의적절한 주제를 선정하는 것과 공신력 있는 자료를 참고하는 데 늘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 국회도서관 의회정보실에서 발간한 『팩트북』이다.
▲ 국회도서관 의회정보실에서 발간한 『팩트북』이다.

 

박 주무관은 “관련 자료가 미비하거나 비교적 최신성이 요구되는 자료의 경우엔 공개된 자료 외에도 신문, 잡지에 게재된 기사를 참고해 회답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회답 업무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종종 요청서만으로 질의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일반적으로 회답 요청서는 서면으로 접수받기에 요청서만 보고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 중에도 업무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박 주무관의 모습을 통해 기자는 가장 적절한 회답을 위한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박 주무관과 헤어진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국회 의정관 지하의 국회기록보존소 서고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홍연주 기록연구사는 기자의 방문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좁은 서고에 정리된 수많은 자료를 통해 그의 노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국회기록보존소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기록물을 누락 없이 관리해 국회 활동의 증거를 보존하고 필요한 시점에 열람을 원하는 이용자가 확인할 수 있게 제공하는 것이다. 홍 연구사는 국회기록보존소의 업무 중 ‘비전자 기록물 이관’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기록물 관리 업무가 국회 발전에 있어 ‘증거를 보존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업무를 앞서서 이끌기보다는 ‘뒤에서 지원하는 업무’로 소개했다. 업무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엿보이는 말이었다. 


건물을 나가기 전 기자는 마지막으로 법률정보실에서 외국법률정보과 박진애 법률자료조사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속한 외국법률정보과는 법률 정보 회답 서비스를 제공하고 『최신외국입법정보』라는 발간물을 통해 선제적 입법 지원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다른 회답 업무와의 차이점은 ‘외국 법률’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법률정보실엔 현지 국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언어별, 국가별 전문 조사관이 상주한다. 


박 조사관은 외국과의 단순한 법률 비교보다 우리나라의 법체계와 입법 개선 요구사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 나라의 법에는 문화와 사고방식도 함께 응축된 경우가 많아 외국법률정보과에서 일하기 위해선 넓은 시각으로 법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을 들은 기자는 단순히 해당 나라의 법 조항 암기뿐 아니라 다양한 배경지식을 기반으로 그 나라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함을 느꼈다. 

▲ 박 조사관이 독일법률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
▲ 박 조사관이 독일법률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


소수로 구성된 외국법률정보과는 다양한 국가의 법률을 검토한 뒤 회답 서비스를 진행하기에 업무의 양이 방대함에도 신속성과 정확성이 모두 필요하다. 박 조사관은 인원과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심층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소수의 구성원으로 시간에 쫓기면서도 그들은 비교법적 논점을 찾기 위해 사실관계를 역추적해 나가기도 하고, 질의 내용에 상응하는 입법례가 없는 경우에도 입법을 위한 참조를 제시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기자는 그러한 노력에 상응할 수 있도록 업무 인프라가 하루빨리 개선되길 희망했다. 

 

입법을 위한 끊임없는 고민 
국회도서관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기자는 입법조사관과의 만남을 위해 도서관 1층 로비로 나갔다. 이후 국회 입법조사처 재정경제팀 황성필(32) 입법조사관을 만나 그에게 궁금한 점 몇 가지를 물을 수 있었다. 황 조사관이 몸담은 재정경제팀은 경제·재정·조세·관세 등의 분야를 담당한다. 특히 그는 법인세와 관세에 관련된 의원실의 입법 조사 요구에 답하고, 해당 분야의 보고서 작성을 관할하고 있다. 황 조사관은 조사관마다 전문 분야가 다르며 각각의 분야에 따라 담당하는 부분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임위원회와 황 조사관이 속한 입법조사처 간 유기적인 업무 수행이 입법 지원 활동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관해 묻자, 그는 ‘정치 성향과 방향성’이라고 답했다. 입법조사처 특성상 업무 과정에서 정책 방향과 입법 개선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치 성향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중립적인 태도를 고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문제를 제기한 정책 방향이 언론에서 활용되거나 논의가 활성화돼 현실이 바뀌는 것을 볼 때 그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궁금증을 해결한 기자는 황 조사관과 함께 입법조사처로 이동했다. 조사처에 들어서자 많은 양의 보고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주제로 작성된 수많은 보고서와 책자들은 우리나라 곳곳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그들의 열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가 근무하는 사무실 내부로 들어가니 조사관 모두 각자의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입법 개선 방향 제시를 위해 많은 양의 자료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조사관들을 바라보니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사회 문제에 주목해 법률적 시각으로 더 나은 안건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들의 노력을 느낄 기회였다. 

 

Epilogue
십시일반(十匙一飯),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 쉬움을 이르는 말이다. ‘한심한 일 처리’, ‘국가 세금 낭비’라며 국회를 향한 국민의 인식은 그리 좋지 못한 상황이다. 때때로 국회의원들은 청문회나 공약을 내놓으며 주목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위해 그 뒤에 있는 여러 구성원이 휴식을 포기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발이 닳도록 뛰고 있었다. 지금도 국회에는 의원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돕는 이들의 땀과 열정이 오롯이 피어나고 있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위해 묵묵히 헌신한 이들 덕분에 우리나라는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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