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피아노 학원은 한때 전국 엄마들 사이에서 꼭 보내야 하는 필수 학원 중 한 곳이었다. 학원의 인기에 힘입어 세미클래식이 유행하면서 이루마의 ‘Kiss the rain’과 ‘River flows in you’는 연주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엄마 손에 이끌려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어린이들은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됐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의 추억 속에 숨 쉬고 있다. 우리의 유년 시절을 함께한 이루마(45) 작곡가를 만나봤다.
▶ 자기소개 부탁한다.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하는 이루마다. 반갑다.
▶ 피아노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와 그 계기가 궁금하다.
다섯 살 때 시작했다. 누나들이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는 모습을 보고 ‘나도 쳐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유치원을 너무 가기 싫어하니까 어머니가 “유치원 다닐래, 피아노 배워볼래?” 하시길래 유치원 가기 싫어서 피아노 배우겠다고 한 것도 있다.
▶ 이름 때문에 일본인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던데. 이루마는 무슨 뜻인가.
‘뜻을 이룬다’는 의미다. 활동명이 ‘Ruma Lee’도 아니고 ‘YIRUMA’이다 보니 많이들 오해한다. 또 내가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시기가 워낙 일본 작곡가나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활동하던 때라 일본인으로 오해했던 것 같다.
▶ 어렸을 적부터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불편했던 점은 없었는지.
국민학생 때 영국으로 유학가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언어적 장벽이 가장 컸고 알게 모르게 동양인 차별도 받았다. 피해의식이 생겨서 어디서 내 이름 들리면 나를 흉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싸움 걸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음악 학교였기에 친구들에게 내 음악 실력을 보여주면서 자신감도 얻고 영어도 조금씩 늘었던 것 같다.
▶ 영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에 다녀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해군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인이다. 병역은 한국 사람으로서 의무고 부모님도 내게 군대는 갔다 와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 해군 세일러복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해양소년단 활동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나 해군 가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어 해군 군악대로 지원했다.
▶ 작곡가와 피아니스트 중 어떤 타이틀을 더 선호하는가.
망설임 없이 작곡가라고 말한다. 연주자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내가 작곡한 곡을 직접 연주하다 보니 피아노 연주자가 된 것뿐이지 난 작곡가가 더 맞는 것 같다. 대학에서도 작곡을 전공했고, 내 아이덴티티는 작곡가다.
▶ 6년 넘게 진행한 <골든디스크>로 라디오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오래 한 만큼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직업병인지 어디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이를 분석하게 돼 음악을 온전히 편안하게 들어본 적이 드물다. 그런데 라디오 DJ를 할 당시에는 옛날 음악을 들으면서 즐겼던 것 같다. 라디오는 청취자들과 함께 듣는다는 점에서 혼자서 듣는 것보다 즐거움이 배가 된다. 지금도 가끔 라디오 하던 때가 생각난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심야 라디오를 진행해보고 싶다.
▶ 드라이브할 때 노래는 많이 듣는지.
듣긴 듣는다. 말했다시피 노래 분석하는 게 습관인데 드라이브하면서는 별로 생각을 많이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배경음악처럼 틀어놓고 운전한다. 요새 유행하는 시티팝을 즐겨듣는다.
▶ 2AM, 샤이니, 규현 등 여러 앨범에 가요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클래식과 가요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어떤 장르든 클래식이라는 기본 토대가 없었다면 그 어떤 음악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흘러간 음악들을 알아야 새로운 음악을 쓸 수 있다고 늘 말한다. 요즘 클래식을 샘플링한 노래들이 유행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음악은 옛 세대와 현세대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클래식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고 지금의 음악도 언젠간 클래식이 된다. 모든 음악은 공존하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굳이 클래식과 가요에 차이를 두고 싶진 않다.
▶ 2016년 <MAMA>에서 랩퍼 비와이와 콜라보 무대를 하기도 하고 작년에 성악가 조수미와 앨범을 내기도 했다. 어떻게 다양한 장르에 도전할 수 있었는가.
혼자서 연주 음악만 써오다 어느 순간 자극제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연히 스튜디오에서 다른 프로듀서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같이 가요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해서 가요에 도전하게 됐다. 가요는 편곡이라든지 과정도 많고 스태프들도 많아서 나중에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이 나올 때도 있다. 그게 나 혼자서 할 수 없는 음악을 만들고 음악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
▶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곡을 쓰면서 매일 한다. 곡이 술술 나올 때도 있지만 안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속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질 때도 있고 내가 원하는 느낌이 안 나올 땐 스트레스 받는다. ‘내가 왜 음악을 선택했지’라는 후회를 많이 하지만 지금 다른 거 하기엔 늦었다.
▶ 음악에 대한 본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많은 사람이 “음악은 이제 나올 만큼 나왔다”고 말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어떤 분야든 항상 새로운 게 탄생한다. 올림픽을 봐라. 계속해서 신기록이 나오지 않나. 인간의 뇌는 무궁무진하고 모든 것들은 다 발전하게 돼 있다. 더 좋은 음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작곡한다. 스트레스받지만, 행복한 고민이라고 믿는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가족. 가족이 없으면 음악도 다 소용없다. 나의 피난처이자, 쉴 곳이고, 내 편이다.
▶ 이 글을 읽을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새 경기도 안 좋고 취업도 힘들고 방황을 많이 할 것 같다. 나도 대학생 때 ‘뭘 해야 하나’, ‘음악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 걱정을 많이 할 시기지만 대학 시절이 그리 길지 않다. 사회로 나가기 직전이니 젊음을 즐겼으면 좋겠다. 적당히 즐기면서 미래에 대해 고민도 하고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
Epilogue
그는 피아니스트보다는 작곡가로 불리기를 더 원했다. 자신이 만든 곡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행복을 줄 때 음악가로서 가장 보람차다고 한다. 음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면서도 여전히 음악을 할 때면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그가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기자는 느낄 수 있었다. 작곡가 이루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행복을 건네기 위해 매일 오선 노트를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