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코너의 어제와 오늘
장수 코너의 어제와 오늘
  • 강서영·송주연 기자
  • 승인 2023.03.07 16:59
  • 호수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내 구성원 아고라를 만든 단대신문

단대신문은 오랜 세월을 걸쳐 1500호를 맞이한 만큼이나 40년을 넘긴 장수 칼럼이 여럿 있다. 단대신문 동우나 편집국장이 시사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적는 ‘화경대’, 편집장 칼럼 ‘백색볼펜’, 기자의 취재 후기를 담은 ‘주간기자석’, 교수의 비평을 담는 칼럼 ‘백묵처방’이 그 주인공이다. 1500호를 맞이하기까지 단대신문을 묵묵히 지켜준 본지의 주역 코너들을 자세히 알아보자.


화경대  Since. 1962. 5. 1.

 

화경대(華鏡臺)에서 우리 대학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화경대는 한남동에 위치했던 서울캠퍼스 맞은편 산을 칭한다. 코너 ‘화경대’는 화경대의 정자에 걸터앉아 한강의 운치를 바라보며 사색하듯 본지를 거쳐 간 동우들의 사색과 반성을 담고 있다.


화경대는 본지 150호(1962.04.15)에 처음 등장했다. 첫 칼럼은 “그러나 반드시 「주먹」의 힘으로 기풍을 해하고 타인의 생활을 방해하는 것만이 깡패일까?”라며 법보다 주먹을 앞세워 사회를 불능하게 만드는 깡패와, 자신의 실력을 증진하지 않으며 공익을 저해하는 개인이 다를 바가 없다는 내용이다. 필자는 이를 미국 사회에 극악의 범죄를 저지르던 알 카포네와 조이 갤로 이야기에 빗대어 표현했다.


본지 823호(1990.03.20.) 화경대의 제목은「한바탕 바람」이다. 필자는 지난 10년간 벌어졌던 정치적 핍박, 민주화의 격변기 속 겪어야 했던 대학생으로서의 무기력함과 부끄러움을 담담히 받아들였으며 이는 한바탕 바람으로 지나간 시절이 됐음을 보여줬다. 또한 시대의 격변기 속에서 끝이 없는 고난의 증거인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거목으로 성장한 단대신문 숲에서 그간의 희로애락을 한바탕 바람으로 추억할 수 있길 바라며” 대학신문의 존속과 진보에 대해 피력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시사 문제에 대한 사색과 반성뿐만 아니라 단대신문 기자 생활을 했던 필자의 삶과 사적인 감정이 드러난 글이 늘어났다. 일례로 본지 1099호(2003.08.26.)에서는 신문사 생활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필자는 허다한 슬픈 날들을 살아가며 과거 기쁜 젊은 날이었던 신문사 시절을 곱씹으며 그리워했다.
죽전캠퍼스로의 이전과 필자 인력난으로 인해 화경대는 1280호(2010.08.31.)을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화경대는 단대신문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수많은 지면을 거쳐오며 우리 대학 학우와 동우들의 사색을 대변해준 코너였다.


주간기자석 Since. 1977. 11. 3.

매주 신문이 발행되고, 그에 따라 매주 기자의 솔직한 비평을 건네는 주간기자석은 1977년부터 40년 넘도록 그 이름을 유지해왔다.


본지 505호(1977.11.03.)에 처음 등장한 週刊(주간) 기자석의 제목은 “새로운 傳統(전통) 확립하자- 象徵的 座標(상징적 좌표) 설정돼야”이다. 개교 30주년과 동시에 출범한 코너였기에 “현재 단대의 표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몇몇 학생이나 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곰이 상징하는 한민족 상을 제대로 인식하는 재학생들이 전체 몇 퍼센트나 있는가”라며 대학의 홍보 전략 요구와 개교 30년 맞이 새 지표 확립을 주장했다. 


본지 641호(1983.02.21.)에서는 당시 시행한 학도호국단운영지침(당시 전시안보를 위해 존속했던 학생 조직)에서 학과비·학생회비 등 학원 잡부금을 걷지 못하도록 한 일에 대한 긍정적 의견을 전했다. 필자는 “잡부금을 못 걷게 한 것은 좋은 조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와 아울러 줄어든 예산 탓으로 학생활동이 위축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최종적으론 줄어든 예산에도 편성과 집행을 치밀하게 해 “서클(現 동아리) 활성화를 적극 추진하면서 학회 활성화도 병행해야 하는 것”을 주장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며 코너의 주제는 확대됐다. 기자의 삶에 대한 철학과 기자의 삶을 적은 글이 늘었다. 본지 1437호(2018.03.06.)에는 “기자는 신문에 대해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전보다는 훨씬 성장했다고, 반년 전으로 돌아가도 망설이지 않고 신문사에 지원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이 비단 기자만의 생각이 아닌, 당신의 일이 되길 바란다”고 쓰여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제는 바뀌어왔으나 기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담아온 코너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

 

백색볼펜  Since. 1967. 3. 21.

기자라면 무릇 펜으로서 정의를 추구한다. 본지 233호(1967.03.21.)에 처음 등장한 백색(白色)볼펜은 편집장을 필두로 한 1인 칼럼이다. 학생 기자로서 정의를 다짐하며 지성에 관한 갈망을 펜으로 써 내려왔다. 


본지 431호(1975.06.12.)의 주제는 「상아탑」이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미래는 허황되게 꿈꾸고 있는 낭만과, 이래도 저래도 대학은 4년 밤낮없이 쾌락만을 추구하는 낙천주의자”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과, 대학생 신분으로서 학문에 대한 열망보다는 현재에 안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현실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이 드러나 있다. 이처럼 백색볼펜은 주로 현실에 대한 편집장들의 비판 정신과 불의에 대한 대항을 담고 있다. 


본지 760호(1987.07.14.)에는 빛과 소금을 제목으로 “「직선제」가 각종 탄압과 부정에 대항하여 거둔 대가이며 누군가의 아량에 의한 것이 아닌 불의에 대한 심판의 결과”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또한 정권의 탄압과 불안한 시국 속에서 정의를 다짐했지만, 여러 상황을 감당하기 벅찼던 백색볼펜에 대한 절망감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정치적 격동기가 지나간 2000년대는 사회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 약자, 개인의 권리에 대한 주제도 늘어났다. 본지 1045호(2001.04.03.)에는 “장애인에게도 일반인과 똑같은 기회를 부여하는 의미에서 장애 학생을 선발하지만, 그들을 배려한 시설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누구 하나 장애 학생을 인식하는 사람이 없다”며 장애 학생 처우에 관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리를 잃어가는 언론에 대해 기고하는 칼럼이 늘어났다. 본지 1496호(2022.10.06.)에서는 “정보 전달이라는 키워드에 갇히지 않고, 사실 이면의 진실을 위해 취재하고 보도해야만 하는 것이 언론이 추구하고 나아갈 길이다”라고 전하며 언론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논했다. 이렇듯 백색볼펜은 지금도 끊임없이 편집장의 펜촉으로서 사회의 비판점을 날카롭게 적어내고 있다. 

 

백묵처방 Since. 1978. 4. 20.

 

하얀 분필로 처방할 수 있는 ‘무언가’. 기자가 펜을 쥔다면 교수는 분필을 잡는다. 본지 510호부터 등장한 白墨處方(백묵처방)에는 매주 우리 대학 교수들의 비평이 게시됐다.


첫 번째 주제는 본지 510호(1978.04.20.)에 실린 「소꼬리」다. 필자는 “소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는 몸집이 작지만 닭의 벼슬이 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라고 했다. 우리 대학은 후기대학(전기 대학보다 늦은 시기에 신입생을 모집하는 대학)이지만 일류 학생들이 모였다면서 재학생에 대한 칭찬과 대학 발전에 대한 염원이 담겼다.


이처럼 백묵처방에 실린 글은 대체로 학생의 태도와 삶에 초점이 잡혔다. 본지 581호(1980.11.20.)에는 “주변의 이해관계를 떠나 진정한 앎을 찾아 탐구 열의를 올리는 것만이 오늘날 학도들의 급선무가 아닐까 하고 눈을 감고 생각해보는 것이다”라며 지식 습득의 필요를 말했다.


본지 1269호(2010.03.18.)엔 강의 일수 15주 조정에 관한 의견이 게시됐다. “교수는 최대한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전과 비교해서 수업에 결손이 없도록 노력하고, 학생들도 수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매번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모든 단국인이 한 곳을 바라보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아닌가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


최근에는 사회 현상에 대한 의견을 남긴 경우가 늘었다. 본지 1451호(2018.11.21.)에선 “미디어의 개별화, 개인화, 파편화 현상 때문에 공통의 문화적 경험도 적어졌고 함께 말하긴 더 어려운 일이 됐다”며 ‘홀로 문화’에 대한 견해가 실렸고 본지 1485호(2022.01.04.)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타격을 다루기도 했다.  백묵처방엔 셀 수 없이 많은 교수의 생각을 살필 수 있고, 그러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문의 활자는 사실만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다. 필자의 생각과 감정이 모여 몇천 자의 글이 세상에 알려진다.  본지의 장수 코너 4개는 글을 쓰는 사람도, 글의 주제도 다양했으나 공통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생각을 개진했다. 혹자는 글에 위로를 받거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때로는 반박을 준비할 수도 있다. 이런 영향들이 모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본지는 앞으로도 이러한 코너들을 통해 우리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담는 공론장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