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밤늦게 대학 동기들 단톡방에 느닷없이 노래 한 곡이 올라왔다. 산울림의 ‘청춘’. 다른 일로 술자리를 갖던 친구가 불현듯 옛 생각이 났는지 올린 것이었다. 그러자 다 지나간 청춘을 불러서 무엇에 쓰겠느냐는 둥, 아무개가 예전에 어쩌다 부르던 노래라는 둥, 이런저런 댓글이 꼬리를 물었다.
국문과를 함께 졸업한 친구들이지만, 지금은 제각기 하는 일이 달라 어떤 친구는 목사로, 어떤 친구는 학원 원장으로, 또 어떤 친구는 인테리어업체 사장으로, 보험사 대표로, 작가로, 고등학교 교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는 곳도 달라 어떤 친구는 부산에, 어떤 친구는 가평에, 또 어떤 친구는 동해에, 서울에, 일산에 각기 흩어져 산다. 이들에게 대학은 무엇이었을까?
필자 스스로 대학 생활을 되돌아본다. 대학 4년 동안 여러 교수님께 많은 강의를 들었지만, 무엇을 배웠는지 말하라면 딱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140학점이면 졸업이 가능하던 시절, 필자는 무려 152학점이나 수강했다. 그렇건만 강의실에서의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전공필수 교과목이었던 ‘국문학사’의 중간고사 문제가 당신이 저술한 교재를 몇 페이지까지 몇 번 읽었는지 적고, 자기가 외우고 있는 시조를 모두 적으라는 것이었다거나, 교양필수 과목이었던 ‘국어강독’ 시간에 매주 10분씩 별도로 『채근담』을 읽어주셨던 것 정도.
오히려 대학 4년 동안의 기억이라면 이런 것들이다. 대학 1학년 때 첫 MT를 떠나기 위해 마장동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사복경찰이 느닷없이 친구들의 가방을 뒤졌다는 것. 다행히 특별한 일이 생기진 않았지만, 그땐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도 새터에서의 MT는 모닥불가에서의 추억과 함께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다.
석양이 붉게 물들어가던 여름, 교수님께서 연주해주시던 하모니카 소리도 40년이 훌쩍 넘었건만 여전히 귓가를 울린다. 해 질 무렵 건너편 산 너머 하늘이 그림처럼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는데, 마침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시던 교수님께서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으시더니 호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멋진 연주를 해주신 것이었다. 그때 연주하신 곡이 무엇이었는지, 그 옆에 앉아 넋을 잃고 쳐다보던 친구들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모습만은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대학은 그런 곳이 아닐까? 강의실 안에서보다는 강의실 밖에서 더 소중한 경험을 나누게 해주는 곳. 나와 다른 사람들,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열고 성근 생각과 경험을 나누며 이전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변화하게 해주는 곳, 그런 곳이 대학이 아닐까?
우리 학생들은 앞으로 40년 후에 우리 대학을 어떤 곳으로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