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기능과 단대신문의 역사
신문의 기능과 단대신문의 역사
  • 허재영(교육대학원)교수
  • 승인 2023.04.04 14:23
  • 호수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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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영(교육대학원)교수

단대신문이 1502호 발행을 맞았다. 벌써 1500호 이상이 발행된 것이다. 내가 이 신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범정 장형 선생의 교육사상을 연구하면서부터이다. 


범정은 일제 강점기 고학생 친목회를 구성해 전국 강연을 다녔으며, 독립투쟁을 전개했던 인물로, 단국대학을 설립한 분이다. 


나는 일제 강점기 『동아일보』에 남아 있는 짤막한 전국 강연 기사와 강연 제목을 통해, 그분이 남긴 애국 사상과 교육 정신을 되짚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단국대학 설립 이후 범정을 중심으로 한 단국대학 통신교육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1949년 단국대학교 부속 교외대학에서 발행한 『단국대학 중학 강의』를 비롯해 다수의 통신 강의록을 구매했다. 이들 강의록은 중학뿐만 아니라, ‘법률’, ‘정치’ 분야의 전문 분야까지 확대됐는데, 표지에는 지식 보급을 위한 범정의 담론이 나타난다.


담론은 범정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 사상의 핵심은 ‘구국, 자주, 자립’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그는 통신교육을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과 지식층들에게 이 사상을 널리 전파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상은 『단대신문』 창간호의 ‘단국대학을 세우고 나서  국가 민족의 재흥에 기여-’라는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강의록과 창간호에서 만난 범정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귀를 기울여 볼 만한 웅변이다.


오늘날 종이 신문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인 일간지조차 판형과 발행 체제, 독자와의 소통 방식 등을 전부 바꿨다. 인터넷 신문이나 주요 포털 사이트, 심지어 개인 뉴스 전달 방식에 이르기까지 지식과 정보의 소통 방식이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과거의 역사를 들추고, 자유와 지성을 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신문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근대 이후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한국의 교육, 지식 유통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그 시대의 신문을 끼고 살지 않을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근대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신문들은 깊이 있는 연구 성과물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공론장으로써의 역할까지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단대신문에서도 이러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국어와 국문의 역사에 대한 장도빈(제66호), 최근 언어학계의 동향과 언어학사와 관련된 김방한(140호), 명태조의 농업 정책과 관련된 장충식(108-111호) 등의 논문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가치 있는 자료가 수없이 많은 단대신문이 오늘날에도 그 역사를 이어 본질적 가치를 지속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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