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의 낭만을 찾는 일
미증유의 낭만을 찾는 일
  • 서다윤 기자
  • 승인 2023.05.23 14:23
  • 호수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정확히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순수했던 어릴 적에는 무작정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시험공부에 힘이 들 때, 성적에 비관할 때. 지친 몸과 마음은 사람들의 선플로 치유했다.

 

어른이 되며 순수함 대신 치열함을 내세웠다. 내가 좋아하는 글보다, 남이 좋아하는 글을 더 선호하게 됐다. 이제는 타인에게 ‘좋은 글로 인정’ 받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기준을 규격 삼아 기자 스스로를 끼워넣고 있었다. 신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기자라는 꿈을 갖게 된 건 단순히 글쓰기가 좋고, 먼저 앎이 좋아서였다. ‘미증유의 낭만’이었다. 미증유(未曾有)란, 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 일을 말한다. 기자는 이 직업이 미증유의 첫 발견자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더 빨리, 미지를 탐구하는 탐구자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기자는 어느 순간부터 오랜 꿈이 돼 있었다. 단대신문에 덜컥 붙었을 때 느낀 감정은 ‘설렘’이었다.

 

그러나 취재계획서를 작성하고, 인터뷰 요청을 하고, 미리 정보를 얻는 과정은 생각보다 고됐다. 기사 하나를 마감하면 다음 기사가 기다렸고, 다음 회의가 기다렸다. 하물며 팩트보다 임팩트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임팩트를, 그리고 기자로서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팩트를 기사에 적절히 녹여내야 했다. 손에 천칭(天秤)을 들고 계속 임팩트와 팩트의 중용을 맞추는 일이었다. 새벽까지 저울질을 끝내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축제 취재를 하고, ‘화요일에 만나요’ 코너를 취재하며 뼈저리게 느꼈다. 기자는 정보의 낭만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직업이다. 무대 바로 앞 프레스존에 설 수 있어도, 즐길 수는 없다. 동경하던 이를 만나도 독자들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낭만’은 흐려지고, 어느샌가 설렘이나 순수는 사라졌다. 기자는 낭만적인 탐구자가 아닌 선발대였다. 뒤에 올 이들에게 정보를 전하고, 제자리에 머물지 않은 채 다시금 나아가는 것.

 

그렇게 기자라는 직업에 가졌던 감정이 흐려질 때쯤, 신문이 나오고, 사람들이 읽었다. 기자가 먼저 안 일들을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는 시점이다. 사람들은 몰랐던 사실들에 들떴고, 때로는 화냈고, 때로는 슬퍼했다. 그 모습을 보며 기자는 뿌듯함을 느꼈다. 미증유를 먼저 찾아냈다는 뿌듯함, 내 글에 공감해준다는 감동, 감정을 배제한 글임에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신기함.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지금의 기자를 이루고 있다. 알고 싶은 뉴스와 알아야만 하는 뉴스를 구분해 정도를 지켜야 함을 알게된 기자는, 오늘도 타인이 얻고 싶어 할 미증유를 찾아나서기로 한다.

서다윤 기자
서다윤 기자 다른기사 보기

 clyoon@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