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고 세월은 남루해진 신문지처럼 녹슬어간다. 절조 있는 고독이 행운의 변곡점으로 변환될 지하철 7호선을 탄다. 문득 나선 7호선 종점 장암역은 개와 늑대의 시간, 신기루처럼 펼쳐진 수락산을 향하면 천상병거리를 스크랩한다.
어느 여름날 막걸리 한 사발에 민물참게 라면을 끓여 먹고 적당히 취기와 객기가 발동하여 해 저무는 강변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던 그 여름 한때, 우리는 잊지 못할 음식을 조리했으니 그 황홀한 레시피란 두부 한 모에 청양고추, 대파 두어 포기, 남집 밭둑 깻잎 서리한 것 한 주먹, 임진강 민물새우 몇 마리, 낚시꾼이 아끼던 양동이의 민물참게를 잔뜩 침탈해 라면수프 투하하여 바글바글 양푼에 끓여내 서울살이 세 남자, 부산에서 온 두 여자가 우연히 만나 유행가를 부르며 부어라 마셔라 취해 저녁달 아래 밤을 지새웠던 것인데, 살아생전 그런 멋들어지고 절조넘치는 두부탕은 그날 이후 만나보질 못했다.
우리 인생이란 건 추억을 먹고 사는 것, 때때로 두부요리집을 지날 때면 그 잊지 못할 두부요리탕이 생각났는데 기이한 만남은 필연이던가.
수락산을 하산하여 출출한 채로 수락산 천상병거리를 지나는데 장암역 수락산입구 두부마을 양반밥상 간판이 정겨워 무심히 요기나 할 겸 들어선 메뉴판에서 두부전골을 발견하고 주문을 넣었다. 푸짐한 전골냄비에 두부가 섬벙섬벙 얹히고, 버섯 청양고추 숭숭 파란 대파에 꽃게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그냥 기사식당 정도로 생각한 집이라기엔 밑반찬마저 푸짐하고 알싸하다.
찌게 국물 한 스푼 맛본 순간, 잊었던 그 맛, 임진강 어느 여름날의 알싸하고 구성진 두부참게탕을 구현하는 국물 맛에 잃어버린 옛친구가 생각났으니 반찬도 오가피장아찌, 무말랭이, 시원한 겉절이 배추김치, 이 맛이야말로 소리꾼으로 치면 남도소리 한 소절을 구현하는 맛 아니겠는가.
찌게 한 숟갈에 옛벗과 추억이 되살아나는 수락산 초입 두부마을양반밥상 미각의 추억, 이 또한 내가 살아있음으로 누리는 절조 있는 호사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대여, 7호선 전철을 타시고 수락산 아래 두부마을양반밥상 문을 밀치고 들어가 얼큰한 두부전골에 막걸리 한 사발의 멋 한번 부려보시라, 저무는 이승의 멋들어진 해학 아니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