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호선 종점, 수락산 두부마을의 추억
7호선 종점, 수락산 두부마을의 추억
  • 전병하 푸드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05 14:16
  • 호수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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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부전골
▲ 천상병거리의 두부전골이다.
▲ 천상병거리의 두부전골이다.

 

꽃은 피고 세월은 남루해진 신문지처럼 녹슬어간다. 절조 있는 고독이 행운의 변곡점으로 변환될 지하철 7호선을 탄다. 문득 나선 7호선 종점 장암역은 개와 늑대의 시간, 신기루처럼 펼쳐진 수락산을 향하면 천상병거리를 스크랩한다.


어느 여름날 막걸리 한 사발에 민물참게 라면을 끓여 먹고 적당히 취기와 객기가 발동하여 해 저무는 강변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던 그 여름 한때, 우리는 잊지 못할 음식을 조리했으니 그 황홀한 레시피란 두부 한 모에 청양고추, 대파 두어 포기, 남집 밭둑 깻잎 서리한 것 한 주먹, 임진강 민물새우 몇 마리, 낚시꾼이 아끼던 양동이의 민물참게를 잔뜩 침탈해 라면수프 투하하여 바글바글 양푼에 끓여내 서울살이 세 남자, 부산에서 온 두 여자가 우연히 만나 유행가를 부르며 부어라 마셔라 취해 저녁달 아래 밤을 지새웠던 것인데, 살아생전 그런 멋들어지고 절조넘치는 두부탕은 그날 이후 만나보질 못했다.


우리 인생이란 건 추억을 먹고 사는 것, 때때로 두부요리집을 지날 때면 그 잊지 못할 두부요리탕이 생각났는데 기이한 만남은 필연이던가.


수락산을 하산하여 출출한 채로 수락산 천상병거리를 지나는데 장암역 수락산입구 두부마을 양반밥상 간판이 정겨워 무심히 요기나 할 겸 들어선 메뉴판에서 두부전골을 발견하고 주문을 넣었다. 푸짐한 전골냄비에 두부가 섬벙섬벙 얹히고, 버섯 청양고추 숭숭 파란 대파에 꽃게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그냥 기사식당 정도로 생각한 집이라기엔 밑반찬마저 푸짐하고 알싸하다.


찌게 국물 한 스푼 맛본 순간, 잊었던 그 맛, 임진강 어느 여름날의 알싸하고 구성진 두부참게탕을 구현하는 국물 맛에 잃어버린 옛친구가 생각났으니 반찬도 오가피장아찌, 무말랭이, 시원한 겉절이 배추김치, 이 맛이야말로 소리꾼으로 치면 남도소리 한 소절을 구현하는 맛 아니겠는가.


찌게 한 숟갈에 옛벗과 추억이 되살아나는 수락산 초입 두부마을양반밥상 미각의 추억, 이 또한 내가 살아있음으로 누리는 절조 있는 호사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대여, 7호선 전철을 타시고 수락산 아래 두부마을양반밥상 문을 밀치고 들어가 얼큰한 두부전골에 막걸리 한 사발의 멋 한번 부려보시라, 저무는 이승의 멋들어진 해학 아니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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