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9월의 선선한 바람 속에서 더위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지금, 더위와 작별하지 못하는 현장이 있다. 기자들은 포항제철소와 대장간에서 여름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함께했다. 대한민국 철의 중심에서, 우리나라 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외쳤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포항 제철소
기차에서 내린 후 마주한 무더운 포항 날씨에 기자는 ‘이런 날씨에도 제철소 내부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다. 포항제철소 정문을 지나면 보이는 제철소의 모습은 마치 기계로 이뤄진 거대한 도시 같았다. 실제로 포항제철소는 여의도의 3배 크기에 달할 정도로 큰 면적을 자랑한다.
도착한 포스코 역사박물관에선 포스코와 포항제철소에 대한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과거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가난한 시기를 겪었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철소 건설을 추진했고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에 해당하는 1,205억을 투자했다. 결국 1973년, 우리나라에서 첫 쇳물이 흐르는 순간을 맞이했다. 이후 포항제철소는 우리나라 최초 일관제철소로서 쇳물부터 최종 철강 제품까지 생산하고 있다.
한편 전시관에 있는 축소 모형 고로 안에서는 제강 과정을 알 수 있었다. 철을 만들 때, 용광로의 꼭대기에 설치된 장입 설비를 통해 연·원료들이 투입된다. 투입된 연·원료들은 장치를 통해 회전하며 용광로 내부에 고르게 분포하고 용광로의 아래에서는 1,200도의 열풍으로 이들에 열을 가한다. 이 과정에서 쇳물, 슬래그, 부생가스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해 섞여 있다가 서로 분리된다. 이어지는 연속 주조 공정에선 액체 상태의 쇳물을 냉각해 고체로 만들며 중간 소재가 만들어진다. 이 중간 소재는 압연 공정을 통해 후판, 선재, 코일과 같은 다양한 철강 제품으로 재탄생한다. 포스코는 이렇게 만들어진 철강 제품을 활용해 자동차의 차체를 담당하는 기가 스틸, 내진 성능을 가진 건축구조용 전용 강재를 생산한다.
제철소의 힘찬 박동을 느끼다
이어 홍보관에서는 다양한 철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철의 역사를 담은 미디어 아트는 용광로의 정중앙에 서 있는 기분이 들게 했고 포스코 모형을 통해 포스코의 전반적인 공정 과정을 톺아볼 수 있었다. 포스코는 부두를 중심으로 U자 형태로 설계돼 제선· 제강·연주·압연을 비롯하여 수출입의 모든 절차가 부지 내에서 완료된다. 원료를 실은 선박이 포스코 내부 항구로 들어오면 신속한 하역이 진행되고, 제철 과정을 거친 최종 철강 제품들은 화물차와 선박들을 통해 전 세계로 배송된다.
모형으로만 보던 공정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싶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미디어 버스에 올랐다. 제철소 내부는 촬영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듣고 핸드폰을 제출하니, 버스 안의 분위기는 다소 엄숙해졌다. 하지만 투명 OLED 화면이 장착된 버스의 창문에서 영상이 재생됨과 동시에 긴장감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본격적인 투어는 포스코 중앙의 도로를 따라 진행됐으며, 버스 창문 화면으로 견학 코스에 맞게 철강 생산 공정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여러 공장 가운데 넓은 철판인 슬래브를 생산하는 제2 연주공장을 직접 견학했다. 투어버스에서 내린 기자는 즉시 공장을 조망할 수 있는 관람자용 경로를 따라 걸어갔다. 공장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뜨거운 열기의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새빨간 철 덩어리가 무수한 롤러 사이를 지나 납작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순식간에 공정 과정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공장을 빠져나온 후에는 8월의 날씨가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무더위보다도 더 뜨거웠던 이곳에서 작업자는 구슬땀을 흘리며 공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순천 대장간, 냉방 장치 없는 여름
전통적인 대장간의 모습 그대로 운영 중인 순천 낙안읍성은 1983년 사적 302호로 지정된 마을이다. 사적이란 토지 등 면적과 건물로 표시되는 역사의 현장으로서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터전을 뜻한다. 2011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되고 2014년 CNN ‘한국에서 가야 할 곳 50곳’에 선정되었을 만큼 낙안읍성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국 대부분 폭염 특보가 내려진 지난 8월 16일, 기자는 순천 낙안읍성으로 향했다. 입장권을 구매한 후 마을 안으로 발을 들이자, 초가와 산천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멋스럽게 다가왔다. 또 실제로 주민이 생활하는 삶의 터전인 만큼 관광지임에도 소란스럽지 않다는 점이 독특했다. 기자는 마을을 구경하며 지도를 따라 대장간으로 향했다.
마을의 입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장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장간은 건물의 형태가 아니었고, 문이나 외벽이 없는 개방형이었다.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열기를 식혀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가마에서 피어오르는 불과 뜨겁고 습한 공기 탓에 기자의 몸에서도 계속해서 땀이 흘렀다.
대장장이 박현근(82)씨는 읍성 대장간을 1990년대부터 운영해 왔다. 그는 여름이 대장장이에게 어떤 계절이냐는 질문에, 즉각 “힘든 계절”이라고 답했다. 더운 날씨임에도 계속해서 불을 피워 쇳덩이를 녹이고 담금질을 반복하는 작업을 지속하기에 40도를 넘나드는 내부 온도가 버거운 것이다. 대장간은 개방된 구조상 날씨와 계절에 큰 영향을 받는다.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고,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박현근씨는 “겨울에는 불 앞에 있으니 괜찮다”며, 겨울에 가능한 한 많은 작업을 해둬 봄부터 가을까지 판매할 수 있도록 작업량을 조절하고 있다는 계절별 작업 방식을 밝혔다.
달금질과 망치질… 전통 문화 계승을
직접 지켜본 대장장이의 작업 순서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쇳덩이를 화로에 집어넣고 바람을 일으켜 불을 피우며 고온에 달군 후 망치로 두드린다. 화덕에 불을 피우는 풀무질과 집게로 쇠를 늘리거나 굽히는 메질, 그리고 달군 쇠를 물에 넣었다 빼는 담금질의 순서를 반복한다. 완성품이 나올 때까지 두드리는 일이 대장장이의 몫이다. 박현근씨는 “좋은 품질을 위해 기계로 바꾼 풀무질을 제외하곤 모두 옛날 방식을 고수한다”며 “예전에는 손수 풀무질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낡은 선풍기 한 대, 그리고 반자동식의 풀무와 함께하는 지금이 이전보다 나아진 형편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뜨거운 불 앞에서 담금질과 망치질을 반복하는 작업을 체험했다. 장갑을 끼고 화로에 집어넣어 고온으로 달군 쇳덩이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메를 힘차게 내리쳤다. 드는 것조차 버거운 망치로 쇳덩이를 정확히 내리치기는 쉽지 않았다. 쇳덩이가 하나의 물건이 되기까지 대장장이의 많은 땀이 흘렀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대장간을 찾은 김지원(가명) 씨는 “외국에 살고 있어 아이들 방학을 맞아 방문했다”라며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새기는 계기가 돼 좋았다고 밝혔다. 그는 철을 두드리고 쇠를 녹이는 작업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에 진귀한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박현근씨는 “물건이 제 몫을 할 때가 가장 보람찬 순간”이라며 대장간의 보전을 바랐다. 고된 작업과 이촌향도 현상, 작업 자동화의 이유로 대장간이 사라지고 있는 현재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에는 한 번에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짧아진 과정만큼 제품의 완성도는 떨어진다. 정성을 들여 불에 여러 번 달구고, 망치질한 수제 연장은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그는 “선조들이 농기구를 어떻게 만들고 썼는지 후대에 알리기 위해 대장간은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읍성 대장간을 방문하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기 바쁜 시대에서도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존재 이유는 충분함을 깨달았다.
Epilogue
‘철은 산업의 쌀이다’라는 말은 철이 산업 현장에서 우리 밥상에 필수적인 쌀과 같은 존재와 같다는 말이다. 이렇듯 철의 사용 없이 인류의 발전을 논하는 것은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조차 철기시대이며 미래에도 철없이 삶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철은 우리 인류의 과거와 현재이자 미래다. 앞으로도 우리 철의 심장이 영원히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서희·이수빈·유영훈·서다윤·송주연·이다경 기자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