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자주 운동하는 편이다. 집을 나서기 전 조깅화 끈을 고쳐 매면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다. 이런 작은 흥분은 보통 과한 수준의 운동량으로 연결되곤 하는데, 다음날 알이 배겨야 만족스럽다. 근육통이 없으면 시시하고 운동한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운동 후의 뻐근하고 아릿한 그 느낌을 즐길 정도로 자기 가학적 성향이 있으니, 누가 봐도 운동 중독의 증상이 농후하다.
필자는 조깅할 때 시간을 재는 버릇이 있다. 집 앞 고등학교 운동장을 주로 이용하는데, 한 바퀴를 2분 안에 들어올 수 있다. 운동 초기에는 2분 20초대에 들어오기도 버거웠지만 허벅지에 알이 배일 정도의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부어 기록을 당겨놓은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몸과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즐겁고 건강하자고 운동을 하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느긋하게 즐기자는 마음으로 속도를 줄여봤다. 기록은 포기하고 감당할 수 있는 한계의 한참 아래에서 ‘설설’ 뛰어본 것이다. 그날 필자는 새로운 것을 보았다. 기록 욕심으로 미처 깨닫지 못했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주위 아파트에서 뿜어내는 형광 불빛과 은은하게 퍼지는 달빛이 묘하게 어우러져 초저녁의 운동장을 아늑하게 품어줬고, 하늘의 구름과 청량한 산들바람의 존재가 새삼스레 다가왔다. 분명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유롭고 멋진 조깅이었다.
이처럼 스스로를 한계치로 몰아붙이며 사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력을 다해 최선을 쏟아붓는 사람일수록 삶의 템포를 늦추고 유유자적하는 시기도 있어야 한다. 자기 계발서가 주목받고 분초를 다투며 사는 ‘열심히 뛰는 삶’에 열광하는 시대이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 정도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대로 열심히 살면 될 것이고 지치고 버거운 이들은 삶의 쉼표를 살며시 찍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새벽의 어둠을 몰아내는 일출에 희열을 느끼는 이가 있을 것이고 고적한 밤의 달빛을 사모하는 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이은 시험과 스펙 쌓기에 매몰돼 있는 청년들을 대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저녁밥도 챙기지 못하고 학교며 아르바이트 장소, 도서관으로 이리저리 부유하는 그들의 처연한 수고를 모르는 바 아니다. 늘 전력 질주를 강요받는 그들에게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은 허공의 메아리가 돼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시기를 거친 선배의 입장에서 잠시 템포를 늦추어 심호흡이라도 해보라 권하고 싶다. 미처 깨닫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아름다운 삶의 단편들이 도처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팍팍한 삶에 작은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