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시대에 공부를 한다는 것
‘숏폼’ 시대에 공부를 한다는 것
  • 김미지(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23.10.12 15:03
  • 호수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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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몇십 초에서 몇 분짜리의 짧은 ‘숏폼’ 콘텐츠들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과 같이 1인 미디어 영상 콘텐츠 플랫폼들에는 플래시 영상처럼 쉴 새 없이 나타나는 짧은 콘텐츠들이 홍수를 이룬다. 더 짧게, 더 임팩트 있게, 더 흥미롭게, 세상의 수많은 편집 영상 속에 온 감각과 정신을 맡기고 흘러 다니는 시대이다. 최근 한국의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출처:연합뉴스)에 한국인들의 ‘숏폼’ 플랫폼 시청 시간이 월평균 46시간이 넘는다고 하니, 숏폼 시청이 이 시대 국민 취미 오락의 자리에 등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1인 미디어의 폭발이 열어놓은 표현과 소통 및 정보의 민주주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임이 분명하지만, 모든 것이 더욱더 빠르게 손쉽게 소비되고 휘발하고 있다. 전과는 완연히 달라진 정보 및 지식 습득 방식이 우리의 인식 구조나 삶의 습속에 가져오는 변화는 간단치 않은 문제일 것이다. 흔히 지적하듯이 책을 읽는 인구가 크게 줄었다든지 양질의 정보를 얻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문제보다도, 세상과 타인을 대하고 사고하는 우리의 호흡이 점점 짧아지고 몰입의 정도 또한 약해지는 것은 아닐지 하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문학 작품을 감상하고 글을 읽고 쓰는 훈련을 강조해 온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한 해 한 해가 다르게 다가온다. 숏폼이나 시청각 영상으로 콘텐츠를 향유하고 챗GPT가 대신 써주고 답해주는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 긴 호흡의 글을 읽어낸다는 것의 가치를 어떻게 계속 납득시키고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A4 용지로 열 장가량의 단편소설 한 편을 학생들에게 읽히는 일은 해마다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고, 챗GPT가 쓴 글인지 직접 쓴 글인지를 의심하는 일들이 장차 골칫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꼭 한 번쯤은 소개하는 책으로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이 있다. 어린 시절 그의 숙부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아름다움을 열띤 목소리로 조카에게 들려주곤 했는데, 이때 그는 한 사람의 인간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는 데에 감동했다고 한다. 물론 ‘살아있다는 것은 부단히 배우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그의 말은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빠르게 더 짧게 순간의 만족과 웃음을 소비하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는 요즘, 대학 시절에 몰입하는 공부의 열정과 기쁨을 맛보지 않는다면 그럴 기회는 점점 더 얻기 어려워질 것이다. 짧은 호흡이 대세가 된 시대, 긴 호흡의 공부가 우리의 긴 인생에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스스로 시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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