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새벽이 찾아오고 또 일터로 떠난다. 사는 건 어차피 밥 한 끼 얻으러 불길 속 날아드는 불나방 아니겠는가?
허름한 충무로 뒷골목에서 추어탕 한 그릇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옆테이블엔 기름때 묻은 작업복 남자들이 정치를 논하며 침을 튀기는데 늙은 주인장은 구부러진 허리로 실파김치를 상에 놓고 그 옆에 청양고추 토파 놓은 양념통을 진열한다.
“야이놈들아. 너나 잘해라”하며 혀를 차듯 발을 질질 끄는 노파가 스텐 컵에 물 한잔 털썩 내려놓는다. 보글거리는 뚝배기에 걸죽한 추어탕에 파김치를 넣고 청양고추를 두 스푼을 넣어 내장의 허기를 채워보기로 한다.
속이 알싸하다, 톡 쏘는 감칠맛, 어릴 적 개천에서 잡던 미꾸라지의 파닥임과 경이롭게 물놀이 하던 열 살 메기의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추어탕을 먹으며 나를 데리고 장날이면 학산장 추어탕을 시켜 드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나고, 극성스럽던 유년의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 맛, 그을린 천장, 허름한 창문에 땀 흘리며 막막하게 고독했던 슬픔을 달래주는 건 서글프게도 추어탕 한 그릇뿐이구나.
진양 상가 옆 십이지장 같이 꼬인 골목길 끄트머리 간판 없는 추어탕집이 있다. 허름하게 살다 떠나가는 게 우리 인생이란 걸 실감하게 하는 걸쭉한 추어탕을 끓여내는 노파의 자글자글 주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반주로 내온 소주 한잔이 유행가 아니겠는가?
강원도 산골에서 공수해온 추어를 갈아 들깨가루 듬뿍, 청양고추 두 스푼, 실파김치 두 젓가락 곁들여 먹다, 가는국수 술술 흩어 끓여 먹는 어탕국수의 맛이라니!
비전의 레시피는 노인네 손맛 300그램, 청양고추 30그램, 들깨가루 50그램, 실파김치 두 젓가락, 밭마늘 갈은 거 티스푼으로 2개. 물론 산초가루 뿌리고, 금방 담은 겉절이 배추김치, 땀흘리며 건져먹은 후 투가리에 육수 더 붓고, 가스불 올리고 가는 국수가락 한 주먹 뿌려 후후 불며 땀흘리며 건져 먹는 어탕국수.
어떠하신가, 그대! 이만하면 그대에게 상처 준 인간들 다 잊고 소주 한 잔 곁들일만 하지 않겠는가? 그대는 술 한잔 따르게, 나는 이마 송글거리는 땀 닦으며 유배온 지구별의 설움을 잊어보려하니. 어서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