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대변인과 악마의 대변인
신의 대변인과 악마의 대변인
  • 양영유(미디어커뮤니케이션)교수
  • 승인 2023.12.05 14:40
  • 호수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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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 앞에서 소신을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밉보여 찍히거나 혼자 튀려 한다며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저 대세를 따라 입을 다무는 게 현실적인 처세술이다. 도끼를 지니고 간언(諫言)하는 지부상소(持斧上疏)의 충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도 정부든 정당이든 기업체든 해당 조직 자체가 단순한 밥벌이 장소로 변한 것은 답답한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끼리끼리’ 정책이 성공한 예는 드물다. 비슷한 생각, 비슷한 출신의 사람이 모인 조직에서는 신선한 아이디어나 쓴소리가 나오기 어렵다. 대부분 좋은 얘기만 하는 ‘신의 대변인(God’s Advocate)’이 득실하니 방향의 그름을 가려내기 어렵다. 반면 집단 사고에 쓴소리하며 반대 이유를 주장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있으면 그 조직은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건강해질 수 있다. 확증편향의 게으름과 아둔함을 찌르는 송곳 같은 질문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묘약이 될 수 있다.  


신의 대변인과 악마의 대변인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유래했다. 1587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인(聖人) 추대 심사 때 찬성 이유를 제시하는 신의 대변인에 맞서 반대 이유를 주장할 악마의 대변인을 두기 시작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에게 의도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도록 강제 의무를 부여했다. 테레사 수녀의 성인 여부를 심사할 당시 무신론자 한 명을 악마의 대변인으로 위촉해 다른 심사위원들의 의견에 비판적 주장을 하게 했다. 


악마의 대변인은 ‘집단적 사고’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다. 미국 예일대 어빙 재니스 심리학과 교수는 1972년 출간한 ‘집단사고의 희생자들(Victims of Group think)’에서 “구성원 개개인이 아무리 탁월한 역량과 경험이 있더라도 동질성이 짙은 사람들끼리 모여 내린 의사 결정의 질은 현격히 떨어진다”라고 주장했다. 구성원의 응집력이 강하고 외부와의 의견 소통이 차단된 조직일수록 집단사고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정치색이 짙은 집단, 특정 학벌과 특정 연줄로 모인 조직에서 발생할 우려가 높다. 


신의 대변인만 득세하는 조직은 미래가 없다. ‘예스맨’만으론 조직의 메커니즘이 건강하게 작동하기 어렵다. 작금의 정치권이 딱 그런 모양새다. 신의 대변인들이 국사(國事)를 망치고, 특정 성향이 끼리끼리 야합해 정치를 망친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묵시적 동조는 의견 통합이 아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존중해야 한다. 귀를 열어야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하다. 악마의 대변인을 두는 리더가 많이 나와야 한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기업체·대학, 심지어 동창회도 마찬가지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더 나은 조직의 발전을 위해 간언하는 악마의 대변인이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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