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해
  • 김미지(국어국문)교수
  • 승인 2024.05.28 14:28
  • 호수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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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아마 일 년 중에 가장 수업을 하기 어려운 달이 아닐까 한다. 휴일에 기념일에 행사도 많거니와 일 년에 한 번 가장 흥성하고 떠들썩한 대학 축제가 버티고 있다. 게다가 계절의 여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달, 절정에 달한 봄날이 아닌가. 이때쯤 되면 3월 초 새로운 각오와 의지로 마음을 다잡고 출발했던 신학기의 긴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학생들의 눈은 전보다 더 찬란한 창밖으로 향하고, 창 안으로 스며든 따사로운 봄의 기운은 몸까지 들썩이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낭만의 시절이라 해도 엄연히 수업은 수업, 집중력이 떨어진 학생들을 향해 나도 모르게 목소리도 손짓도 몸짓도 점점 커지고,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5월의 강의실에서는 등줄기로 진땀마저 흐른다.

 

강의실에 앉아만 있기에는 분명 너무나 아름답고 짧고 아쉬운 계절이다. 이 시절을 만끽하는 것도 대학생의 특권이고 인생에 다시없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축제 주간에는 문학 수업 시간이라는 좋은 핑계와 함께 학생들끼리 조를 나눠 캠퍼스 곳곳으로 내보낸다. 친구들과 함께 캠퍼스를 누비며 단 몇십 분 만이라도 계절의 향기에 오롯이 파묻혀 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종종걸음으로 강의실과 정류장만을 오가던 학생들도, 동기들과 한 학기 내내 말 한번 섞어보지 못했던 학생들도 이 시간을 함께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학생들이 캠퍼스를 다니며 함께 찍은 인증사진들 속에는 5월의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다.

 

캠퍼스 투어에 앞서 수업 시간에 김수영의 시 「폭포」를 함께 읽고 새로 단장된 인문관 뒤편 폭포 공원에 올라가 보니 마침 폭포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폭포의 기세에 압도됐음 직한 시의 화자는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2연) 고 써놓았다. 우리 학생들이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1연) 폭포처럼 거침없이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시를 읽은 학생들이 폭포 앞 짜릿한 물줄기 아래서 이 시를 떠올리며 젊음의 기운을 마음껏 뽐내기를 바란다.

 

5월 광주의 시로 유명한 나해철 시인은 「봄날과 시」라는 시에서 이렇게도 썼다. ‘목련이 마당가에서 우윳빛 육체를 다 펼쳐보이고/ 개나리가 담 위에서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리고/ 진달래가 언덕마다 썼으나 못 부친 편지처럼 피어 있는데/ 시가 라일락 곁에서 햇빛에 섞이어 눈부신데’ 이 봄날에 종이 위에 시를 써서 무엇하냐고. 그러나 시인도 잘 알고 있듯이 누가 뭐래도 봄과 5월은 시를 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시는 종이 위에만 쓰는 것이 아니듯이 꽃은 꽃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목련, 개나리, 진달래, 라일락보다 더 아름답고 청신하고 빛나는 그대들의 봄, 종이 위에든 아니든 여러분의 시를 온몸으로 써 보기를.

 

 

김미지(국어국문)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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