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어렵고, 연구도 배고픈 기초학문은 서러워요”
“취업 어렵고, 연구도 배고픈 기초학문은 서러워요”
  • 송지혜·박단비 기자·최정원 수습기자
  • 승인 2024.05.28 15:52
  • 호수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 기초학문 존립 위기

인문 사회계열 통폐합 바람
순수 학문 고사 위기감 고조
외국 명문대는 투자 더 활발

「대학의 본질과 시대적 소명」(김석수, 2016)에 따르면 대학은 ‘크게 배우는’ 곳, 사사로운 이익이나 욕구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응당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넓은 마음을 갖추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 대학에서 기초학문 연구와 교육 모두 실용 학문에 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초학문 적신호 켜지다.

대학 기초학문이 존립 위기를 맞은 지 오래다. 실제로 현재 국내 다수 대학에서 인문 사회계열, 자연 과학계열의 통폐합을 진행 중이다. 명지전문대와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명지대는 ‘통합 명지대학교’가 출범할 경우, 2025년에 철학과·물리학과·수학과를 폐과할 예정이다. 한국외대는 작년부터 글로벌캠에 있는 영어·중국어·일본어·태국어·통번역학과를 포함한 13개 학과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으며, 올해 덕성여대는 독어독문, 불어불문학과가 폐지 수순을 밟아 내년부터 해당 학과 모집을 중단할 계획이다.

 

해외 명문대학은 기초학문을 경시하지 않는다. 미국의 혁신적인 대학 중 하나인 프랭클린더블유올린공과대학은 인근 대학과의 교류를 통해 공학을 인문학·자연과학·사회과학과 융합해 가르친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이하 ‘MIT 대학’)도 AI와 인문학을 융합하는 등 기초학문을 응용학문의 근간으로 두고 교육이 이뤄진다. World University Rankings 2024의 ‘주제별 세계 대학 순위 2024: 예술 및 인문학’ 분야에서 MIT 대학이 2위를 차지한 것이 그 사례다. 

 

취업난은 기초학문 기피 현상에 한몫한다. 우리 대학 기초학문 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조소영(화학·석사과정·2학기)씨는 “연구비 삭감이 이뤄진 것이나 회사에서 바라는 직렬 자체만 봐도 기초학문보다는 공학 전공자 위주의 공채가 더 많이 올라온다”며 “석사가 아니면 취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그런 부분에 있어서 기초학문의 위기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비 삭감과 취업 문제는 비단 자연 과학계열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혜연(사학·석사과정·3학기)씨는 “인문계열은 연구에 들어가는 돈에 비해 소득을 내기 어렵고,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힘든 학문인 것 같다”며 “당장 먹고살기에 바쁘고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기초학문 학과의 평균 취업률을 살펴보면 과학기술대학은 55%, 문과대학은 64%인 한편 공과대학은 70%를 웃돈다. 과학기술대학에서 가장 낮은 취업률을 보이는 학과와 공과대학에서 가장 높은 취업률을 보이는 학과를 비교하면 30% 이상 차이가 난다.

 

우리 대학은 빅데이터 기반 시대에 발맞춰 미래 산업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최근 우리 대학이 유치한 사업을 살펴보면 대부분 인공지능·소프트웨어 관련 사업이다. 대표적으로는 AI 캠퍼스를 구축해 모든 재학생이 코딩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으며, 이달 21일 첨단분야 혁신융합대학에 선정됐다. 해당 사업은 진행되는 4년(2024~2027) 동안 연간 정부로부터 109억 원을 지원한다. 

 

인문계 중점 지원은 힘들어 

실제로 연구 투자도 인문계보다는 이공계를 중점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우리 대학이 AI캠퍼스를 유치하며 전교생이 코딩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과, 이달 21일 첨단분야 혁신융합대학에 선정된 것도 이공계 투자에 촉각을 내세운 결과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실시하는 ‘인문사회 융합인재 양성사업’에 참여하는 등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 눈에 띄는 실적을 내기에 우리 대학의 인문계열 연구 환경은 아직이다. 황종원(철학) 교수는 “우리 대학은 다른 대학에 비해 기초학문을 보호하는 편이라 기초학문 연구자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다만 최소한의 보호를 넘어 적극적으로 육성해 나가려는 대학의 의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대학 평가에서 연구 분야가 50%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권윤환 평가혁신팀장은 “학문적 특성으로 인해 논문과 인용수에 있어 인문·사회 계열 중 기초학문 분야가 상대적으로 열세인 것이 사실이다”며 평가 기준에 맞춰 좋은 실적을 내려면 인문학보다 이공계열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초학문의 위기 해결을 위해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더 활발해져야 한다. 일러스트 이다영 기자
기초학문의 위기 해결을 위해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더 활발해져야 한다. 일러스트 이다영 기자

“기초 없으면 응용도 없다”

기초학문에 대한 단순한 보호를 넘어 기초학문을 활성화할 방안을 새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승민(수학3)씨는 자연과학의 필요성에 대해 “기초가 없으면 응용도 언젠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 말하며 “학문에 기초가 되는 수학, 물리, 화학이 약해진다면 기술의 발전도 더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원재(국문3) 문과대학 학생회장은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학생뿐 아니라 기초학문에서 파생되는 응용학문, 실용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원상(화학) 교수는 “기초과학 발전과 투자에 대한 대학의 독립적인 교육철학을 확립해야 한다”며 “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쉽진 않겠지만, 타 대학들을 좇아가기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그렇지만 의미 있는 길을 개척해 가는 백년대계 교육정책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중시 정도는 그 대학의 수준을 보여준다”며 “진정으로 품격 있는 대학이 되고자 한다면 기초학문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지혜·박단비 기자·최정원 수습기자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