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카플란(1941~2016)은 스물세 살 평범한 경영대학원생이었다. 1965년 그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다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듣고 엄청난 충격과 감동에 휩싸인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번개가 나를 꿰뚫고 가는 듯한” 전율을 체험한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엉뚱한 꿈을 품는다. 단 한 번도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음알못’이지만, 언젠가는 꼭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대학원 졸업 후 금융전문잡지를 창간해 큰 성공을 거둔 그는 백만장자가 됐는데, 젊은 날의 꿈을 잊지 않았다. 개인 교사를 고용해 하루에 몇 시간씩 화성학·대위법·지휘법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Aura)’를 “예술 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 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것이 뿜어내는 재현 불가능한 단 한 번의 영적 광휘”라고 정의한다. 사진술과 영상술·레코딩 기술이 발명되면서 이 아우라는 위기를 맞는다. 사진으로 복제된 이미지와 음반은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예술 작품을 무한대로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러면서 예술 작품은 그 신비의 베일이 벗겨져 감상자는 이제 숭배가 아닌 비평을 하게 된다. 이는 대중문화의 시대를 여는 중요한 변화가 됐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감상하는 예술 작품의 감동, 아우라까지는 재현할 수 없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를 긍정적인 변화로 여기면서도 인간에게서 ‘지속적인 체험의 기회’를 앗아간 것을 안타까워했다. ‘모나리자’를 본다는 것은 그냥 그림 한 장 보는 게 아니라 파리의 공기와 분위기, 루브르 박물관 외벽에 드리워진 햇살, 그림이 걸린 벽면의 명암과 조명,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의 경탄 어린 표정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체험인 것이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보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이 있는 시간과 장소로 나아가야 하고, 그 나아감 가운데 다채롭고 우연한 아름다움들과 마주하게 된다.
수년의 노력 끝에 길버트 카플란은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처음 말러를 듣고 전율한 지 18년 만인 1981년, 카플란은 자비로 카네기홀을 빌리고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섭외했다. 세상은 백만장자의 과시욕이나 엉터리 괴짜의 기행쯤으로 여겼지만, 그의 손에 들린 금빛 지휘봉이 공중에 우아한 선을 그으며 1시간 20분짜리 대곡을 마치는 순간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후 그는 말러 교향곡 2번만을 지휘하는 전문 지휘자가 돼 세계를 돌며 공연했다. 누군가는 카플란이 지휘하는 ‘부활’을 들으면서 과거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번개 맞은 듯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아우라를 체험한 사람은 아우라의 생산자가 된다. 이 가을, 예술 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로 직접 나아가보라.
이병철(문예창작)교수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