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읽던 시대에서
우주 탐사하는 시대로”
Prologue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 윤동주 시인의「별 헤는 밤」의 한 구절이다.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는 별은 가슴 속 낭만에 불을 지핀다. 예로부터 천문과 관측에 관심을 두던 우리나라는 현재까지도 그 맥을 이어 나가며 관측 문화를 확산해 나가고 있다. 기자는 가을 끝자락의 향기를 머금고 별이 빛나는 낭만의 세계로 들어가 봤다.
손바닥 안으로 들어온 별
“와, 밝은 별들을 볼 때면 신비함을 느껴요.” 도심 속의 별을 사랑하는 서울 시민 박예찬(24)씨의 한마디. 그는 평소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관찰하고, 별자리를 즐겨 찾는다. 오늘날 별자리 관찰 앱의 발달로 밝은 도심 속에서도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전에 남반구에서 별자리 앱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북반구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별도 앱을 통해 관찰할 수 있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별’은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 과거에는 왕실의 연구 대상이었던 천문이 이제는 작은 휴대전화 속에 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밝힌다.
기자가 직접 별자리 관찰 앱을 사용해 보니 마치 온 우주가 손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뿌연 안개와 탁한 공기 속에 숨어있던 수려한 천체를 보아하니 그 모습이 가상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표면 온도가 높아 푸른 빛을 띠는 별부터 붉은빛을 띠는 별까지, 앱을 통해 다양한 별과 별자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도심 속에서 별을 만나다
도심 속에서 천체 관측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기자는 정교한 천체 관측을 위해 국립과천과학관을 방문했다. 기자가 체험한 프로그램은 <수요 관측회-우리 별 보러 갈래?>이다. 총 3부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전문가의 짧은 강연으로 1부 시작을 알렸다. ‘목성 2024’를 주제로 한 강연은 일반인 참가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목성에 대한 정보를 쉽게 풀어 설명했다. 20명의 소규모로 진행되는 만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전문가와 자유로운 질의응답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곧바로 국내 최대 돔 스크린을 갖춘 천체투영관으로 이동했다. 2부 프로그램은 스크린에 오후 4시의 하늘을 시작으로 노을이 저물어 깊어져 가는 밤하늘까지 보여준다. 웅장한 공간을 메우는 찬란한 별. 시선이 향하는 곳마다 별이 반갑게 인사한다. 천문해설사의 흥미로운 별자리 이야기와 잔잔한 오르골 선율이 매력을 더한다.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 손에 잡힐 듯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간 일상에서 쌓인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천문대에 가서 실제 천체를 관측했다. 도시의 불빛을 피해 어둠이 내려앉은 천문대 옥상에서는 맨눈으로도 쉽게 별을 찾을 수 있었다. 이후 보조관측실에서 굴절반사 망원경을 이용해 천체를 더 정밀히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사람의 눈보다 2만 배 밝게 볼 수 있는 ‘1m 반사망원경’으로 별의 섬세한 움직임과 온도에 따른 뚜렷한 색상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광활한 우주 속에 있는 우리의 작은 존재감을 알려주는 듯했다.
천문학으로 ‘관측’을 이해하다
천문학은 우주에 존재하는 천체를 연구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전영범 박사는 천문학에 대해 “우주는 지나온 역사만큼 새로운 별을 만들었고, 또 별이 죽는 과정에서 많은 실험 결과를 우주에 남겼으며, 천문학은 관측으로 그 실험의 결과를 알아가는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천문학 연구에 필요한 관측은 날씨가 좋아야 가능하다. 날씨와 기후에 많은 영향을 받는데, 우리나라는 하늘이 맑은 가을과 겨울이 관측하기 좋은 계절이다. 관측엔 맑은 하늘도 중요하지만, 그날의 미세먼지 농도와 바람의 세기, 온도와 습도도 영향을 끼친다. 이런 요소들이 관측 상황에 어려움을 주기 때문이다. 전 박사는 “너무 추운 겨울엔 장비 보호 차원에서 돔을 열지 못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 천문학은 30m 이상의 거대 망원경 시대에 들어갔다. 또 앞으로 수백 배 더 정교하게 하늘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이 등장할 것이다. 전 박사는 “AI가 천문학이 내놓는 엄청난 자료를 처리한다면 우리는 우주를 더 많이 알고 이해할 것”이라며 “우주의 근원적 의문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라의 첨성대부터 조선의 천문학 연구까지
왕조시대의 천문학은 왕의 학문으로 볼 수 있다. 일·월식이 나타나면 왕은 흉조인지 길조인지 백성에게 설명해야 했고, 천체 변화가 농사 시기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기자는 관측의 역사를 눈으로 보기 위해 경주로 향해 신라시대의 천문대인 첨성대에 방문했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첨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다. 눈으로 직접 본 첨성대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듯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워진 건물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낮아 별 관측에 용이한가 싶었다.
한국천문연구원 양홍진 센터장은 “바닥에서 볼 때와 5m, 7m, 10m 높이에서 볼 때 시야가 확연히 다르다”며 “당시 산짐승이 있어 야외 관측이 위험했기에 특별한 관측대를 두고 하늘을 관측했다는 점에서 천문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가는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첨성대를 왕실 근처에 두고 체계적으로 관측 상황을 보고받았다. 양 센터장은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 천문 관측 기록은 또 하나의 망원경이 된다”며, “그러한 망원경을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 많지 않고, 우리나라가 가진 천문 기록은 매우 오래되고 귀중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시대, 특히 세종대왕의 치세(治世)는 천문학의 황금기로 평가된다. 세종은 국가의 발전과 백성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천문학 연구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다양한 천문관측기구가 개발됐다. 기자는 조선시대의 천문학적 유산을 찾아 국립고궁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에는 세종이 다스리던 시기에 제작된 다양한 기구들이 전시돼 있었다.
세종의 천문학 연구는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서, 국가의 경제 기반인 농업의 발전과 직결됐다. 당시 백성들은 농사를 위해 정확한 시간과 날씨 정보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세종은 해시계와 물시계 같은 다양한 관측 기구를 곳곳에 배치했다. 이러한 기구들은 백성들에게 시간과 계절을 시각적으로 알려줬으며, 이는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크게 도왔다.
천문학을 통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백성의 삶을 개선한 세종의 업적은 오늘날에도 큰 의미를 지닌다.
Epilogue
별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과거 왕실의 권위이자 전유물이었던 천문학은 이제 휴대전화 앱 하나로도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됐다. 무한한 우주에 대한 열망은 천문학의 새 역사를 쓰고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첨성대부터 오늘날 최첨단 망원경까지, 우리나라 관측의 역사는 계속된다.
글·사진=김도영·송지혜·우하혜나 기자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