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칼럼]스물다섯 젊은이의 초상
[동문칼럼]스물다섯 젊은이의 초상
  • 김은비(언론홍보·11졸) 동문
  • 승인 2011.05.25 08:58
  • 호수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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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의 죽음을 들었다. 너무 절친해 듣자마자 달려갈 수도, 너무 멀어 ‘그런가보다’ 할 수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아는 이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일이 끝나고 방문하기로 했다.


  언젠가 그가 죽으면 어쩌나 생각해본 적이 있다. 다른 누구의 죽음도 미리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왠지 그의 죽음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내가 그에게 무심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내가 약한 그에게 이렇게 무심하게 대해도 될까,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그를 향한 나의 태도에 변화는 없었다. 그는 매번 내게 다가오려 했다. 자신이 일하는 대형할인마트에서 볼펜이니, 사탕이니 하는 것들을 내게 선물하곤 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기대를 심어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쌀쌀하게 대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차갑게 내뱉는 ‘고맙다’는 말은 오히려 아무 말도 않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시리게 했으리라.


  그의 죽음을 위해 준비된 상갓집은 조용했다. 스물다섯 살 난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가 술에 취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이 간간히 고요를 깨고 나왔다.


  누군가에 대해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나는 그를 보아온 지 10여년이 되었지만, 그가 떠나고 나서야, 그를 알게 되었다. 그것도 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제껏 본 적도 없는 이들의 입을 통해서. 내가 아는 그는 어릴 적 사고로 몸과 정신이 약간 불안정하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자신의 형편은 생각지도 않고 철없이 군것질 거리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는 것이 전부였다. 본 적도 없는 이들의 입을 통해 들은,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고, 그의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그의 형은 백수다. 그리고 그는 불편한 몸으로 대형마트 주차 안내를 해서 홀로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그는 ‘철없는’ 사람도, ‘한심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질 수 있는 무게 이상의 것을 지고 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미소 한번을 선물하기에도 인색했다.


  그는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벗었다. 그는 이제, 그의 죽음을 위한 이 조용하고 초라한 장례식장이 아닌, 그를 위한 환영과 위로의 성대한 잔치가 벌어지는 곳에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 모인 이들의 눈에 맺히는 눈물은, 우리들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를 더 사랑할 기회를 잃은 자신을 위한 눈물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한 번 더 돌아 볼 기회를 선물하고 떠났다. 그의 마지막 선물을 나는 마음을 다해 감사하게 받기로 했다.


  ‘가정의 달’ 5월이다. 어떤 이는 5월에만 유난 피우지 말고, 평소에 잘하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상업적으로 변모한 가정의 달 행사들을 비난한다. 또 젊은이들은 ‘지출의 달’이라며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나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뚫고 어김없이 귀환한 ‘계절의 여왕’을 환영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따듯한 마음 한번 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을 만나기에, 따뜻한 미소를 보내기에 이처럼 좋은 날씨가 또 언제 있겠는가.

김은비(언론홍보·11졸) 동문
기독교 방송 CTS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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