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성웅성 - 능동적인''봄''
웅성웅성 - 능동적인''봄''
  • 강성규
  • 승인 2004.03.17 00:20
  • 호수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봄은 ‘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라는 봄의 불확실한 어원에 대한 DJ의 멘트를 들었다. 설령 그 불확실함이 ‘확실’하더라도 봄은 겨우내 움츠리고 감추어졌던 것들이 보여지는 계절이 ‘확실’한 것 같다. 새로운 싹을 틔우는 그 이름 모를 식물에서, 깊은 잠 속에서 겨울의 뒤편으로 사라졌다가 봄의 앞 편으로 성큼 다가온 동물까지, 그리고 무언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활기찬 발걸음을 거니는 사람들마저.
이렇게 ‘보여지는’ 모습들의 나열은 연상작용을 부르고 습관적으로 봄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봄이 왔다’고들 한다.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봄이 왔다’고 한 것일까? 혹시 365일전 아니, 730일전, 1095일전……. 그 때의 봄의 이미지가 계절의 궤도 속에서 다시 돌아온 걸까? 그리고 우리가 본 ‘봄’은 그 때의 그 봄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2004년의 봄은 2003년의 봄이고, 1980년의 봄이고, ‘아주아주 옛날 년’의 봄인가?
지금 본인은 이미지나 상징체계의 파괴를 도모하려는 것도, 계절에 대한 부정도 하려는 바가 아니다. 다만, ‘새로운’ 마음가짐인데 우리는 가끔 계절의 순환에 이끌려 ‘습관적’으로 봄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생각해 본 것이다. 습관이 무섭다는 말처럼 보여지는 것을 보기만 하는데 익숙해져 보여지지 않는 것은 점점 어색해진다.
그렇게되면 진정한 ''''2004년의 봄''''의 모습은 과거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된다.
이는 계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나 본 글을 읽고 있는 이 그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보여지는 봄’은 너무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이제 ‘보다’라는 봄의 어원대로 능동적인 ‘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성규<인문학부·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