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는 왜 ‘지혜’를 강조했을까
몽테뉴는 왜 ‘지혜’를 강조했을까
  • 양영유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승인 2023.05.09 14:48
  • 호수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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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양영유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연결의 시대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신기술은 수많은 정보를 축적해 광속도로 지구촌 인류 머릿속에 ‘택배 크로스’를 날린다. 완벽한 크로스를 골로 연결하느냐, 허공으로 날려버리느냐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다양하고 질 좋은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연결하면 일류가 될 것이요, 연결에 실패하면 삼류로 전락한다.


연결은 경쟁력이다. 디지털 속 수많은 사람과 정보를 잘 연결하는 능력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상품 판매 방식의 변혁만 봐도 알 수 있다. 20세기의 가장 큰 부자는 직원에게 최소한의 임금을 주고 자기 물건을 팔게 하는 데 통달한 사람이었다. 21세기의 가장 큰 부자는 어떨까. 임금을 한 푼 주지 않아도 척척 물건을 팔아주는 AI 로봇에 통달한 사람이 될 것이다.


연결은 돈이다. 큰 부자가 직접 로봇을 개발할 능력을 갖춘 건 아니다. 그 능력보다 더 강력한 건 생각의 힘이다. 바로 ‘지혜’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지식을 전수받아 지식인이 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의 지혜를 통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지식과 지혜는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다. 20세기에는 지식이 필요한 시대였지만, 지금은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연결은 지혜의 통로다.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는 사이에 지식이 쌓인다. 지식을 맹신하면 발전이 더디다. 지식을 의심하고, 파괴하고, 다시 쌓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움튼다. 여러 지식에 통달하려고 머리를 혹사하는 사람은 20세기형 인재다. 21세기형 인재는 지혜를 요구한다. 필요한 지식을 찾아내 창조적으로 응용하는 능력이 지혜다. 


지혜는 호기심을 먹고 산다. 끊임없이 ‘왜(Why)’를 외쳐야 한다. 암기한 지식은 ‘왜’에 둔감하다. 당연히 기본 지식은 스스로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디지털 ‘택배 크로스’는 수단일 뿐 타인과 다른 나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몽테뉴가 설파했듯, 다른 사람의 지식을 차용해 지식인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차별화는 어렵다. 나만의 생각이 필요하다. 


호기심은 창조적 사고(creative thinking)의 방아쇠다. 호기심이 없으면 창조적 생각도, 파괴적 도전의 방아쇠도 당길 수 없다.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부터 최근의 AI 챗봇(chatbot)까지 호기심이 없었다면 빛을 볼 수 있었을까. 


호기심은 단순한 지식을 먹지 않는다. 호기심은 자기 체화와 용렬한 도전을 원한다. 시인 피천득은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의 청신한 얼굴’이라고 했다. 청신함은 새로움이고 설렘이다. 청신함은 ‘왜’가 생명이다. ‘Why’를 외쳐야 몽테뉴가 말한 지혜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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