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들어 달라진 상징적인 고등교육 정책이 있다. 대학 규제 완화다. 대학을 옥죄고 있던 규제를 풀어 학령인구 절벽시대를 극복하고 고등교육 경쟁력을 끌어올리자는 취지다.
사실 한국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은 초라하다. 세계 100대 대학에 이름을 올리는 대학이 두세 개에 불과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우리나라 대학교육 경쟁력을 평가 대상 63개국 중 하위권인 46위로 매긴 것이 그 방증이다. 국내 대학의 글로벌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관치’와 ‘규제’를 뒤로 하고 ‘자율’ 모드로 대학 정책을 전환하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교육환경 변화에 따라 대학 설립과 운영 규정을 개선한 것은 평가할만하다. 기존의 교사(건물), 교지(땅), 교원(교수), 수익용 재산 등 4대 대학설립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대학 운영 관련 규제가 느슨해진 것은 1996년 관련 법 제정 이후 27년 만이다. 교육부는 총 입학정원 범위 내에서 학과 설립·폐지의 조정도 자율화했다.
더 나아가 교육부는 정원의 30%를 전공 구분 없이 선발하도록 해 융·복합 연구의 걸림돌인 ‘전공의 벽’을 허물겠다고 했다. 이르면 현재 고교 2학년이 대입을 치르는 2025학년도부터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최근 직접 밝힌 내용이다. 디지털 시대 흐름과 교육 생태계 변화에 따른 적절하고 진일보한 조치다. 대학별로 천편일률적인 전공, 학과, 단과대학 같은 칸막이가 국내 대학 경쟁력을 갉아먹어 온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육부가 ‘완장’을 완전히 떼고 진정으로 자율을 보장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전공의 벽을 허물겠다고 하면서도 “앞으로 가이드라인을 주겠다”,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별화 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대학이 학생을 어떤 방식으로 뽑든 그건 대학의 몫 아닌가. 겉으론 자율을 준다고 하면서 여전히 ‘돈 다발’을 흔드는 관치(官治)의 나쁜 버릇을 탐닉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무전공 선발은 KAIST·포스텍·한동대 등 일부대학이 시행 중이고 자율전공으로 뽑는 대학도 적지 않다. 교육부가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을 일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대학을 진심으로 돕겠다면 교육부 기득권을 다 내려놔야 한다. 대학 입시·학사·재정·운영을 대학 자율에 맡겨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적자생존(適者生存)을 지켜보면 된다. 특히 윤 정부는 고등교육 재정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끌어올려 대한민국 인재 양성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결단이 필요하다. 레토릭보다는 액션이 필요한 시기다.
이런 과정에서 전국의 대학은 뼈를 깎는 ‘셀프 혁신’에 나서야 한다. 교수들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전공과 영역 파괴에 동참하여 새로운 학문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총장은 정부와 구성원의 눈치를 보지 말고 열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대학 살리기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헌신해야 한다. 물론 이번 학기에 안순철 총장이 새 리더가 된 우리대학도 절박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