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윤 대통령은 취임(2022년 5월10일) 이후 줄곧 연금·노동·교육·의료 4대 개혁을 강조했다.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4대 개혁은 국가의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은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가 최저치로 곤두박질하고, 보수의 심장인 영남권의 지지율마저 바닥이다.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 후에도 정치권은 연일 공방만 벌여 민생은 더 팍팍해진다. 이런 마당이니 대통령의 4대 개혁 약속은 공허하기까지 하다.
우선, 연금과 노동 개혁이 지지부진하다.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후속 논의가 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깰 노동 개혁은 구체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교육과 의료 개혁이다. 정부는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 완화와 자율 강화의 방향타를 잡았다. 방향은 옳다. 그런데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글로컬(Glocal) 사업과 라이즈(Rise)사업이 대표적이다. 전국 대학 30곳을 세계적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글로컬 사업과 지역대학을 특성화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라이즈사업은 이정표가 불명확하다. 예산 확보가 필수인데 기존 재정을 긁어모아 명칭만 포장했다는 평가도 있다.
교육부는 2025년 고등교육예산(안)을 전년 대비 9,663억원 증액해 국회에 제출했다. 국가장학금 증액 6,000억원과 의대 교육 여건 개선비 5,000억원을 합치면 실질적으론 조금 늘었다. 게다가 라이즈사업은 교육부 예산을 자치단체가 대신 집행하도록 해 대학이 자치단체장에 머리를 조아린다는 지적이 많다. 단체장이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생색내기용 사업에 몰두하면 고등교육 방향이 비틀릴 우려도 있다.
의정 갈등 장기화는 대학 재정을 옥죈다. 국내 ‘빅 5’ 대학병원을 포함한 전국의 대학병원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의대 증원 여파로 의료공백이 장기화되고 의대생 등록금 손실까지 겹쳐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정 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 상급종합병원인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 등의 올 상반기 당기 순손실은 2,135억원에 달했다.
임기 반환점을 돈 지금 정부는 정책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첨단인력 양성은 의대 파동에 묻혔고, 대학 정책도 오락가락한다. 대학 경쟁력이 곧 국가의 미래이다. 4대 개혁 과제 중 교육만이라도 성공시키겠다는 대통령의 결기가 필요하다. 교육을 정치공학이 아닌 ‘국가의 미래’로 보는 통 큰 리더십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