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 na77kim꼴뱅이
화경대 / na77kim꼴뱅이
  • 김행철
  • 승인 2005.04.12 00:20
  • 호수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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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내 짝꿍 녀석의 이름은 ‘서순경’이었다. 선생님들은 가끔씩 이 친구의 뒤통수를 쥐어박으시면서 “니는 경찰서장이 되더라도 순경밖에 못된다 그자?” 놀리곤 하셨다. 그 친구, 그때마다 억울하다며 투덜거렸었다.
대학 다닐때 거의 붙어살다시피했던 친구 한녀석은 이름이 “변호걸”이었다. 호걸...썩 괜찮았던 이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이 변씨 였던 관계로 그 이름은 늘 이상한 곳을 연상시켰고, 그래서 그랬는지는 사람들은 호걸이라는 걸출한 이름보다는 “어이 변씨~” 그렇게 부르기를 더 즐기는 것 같기도 했었다. 그렇잖아도 작은 키 때문에 콤플렉스 느끼고 살던 이 친구, 그때마다 싯뻘개져서 18이라는 숫자를 반복해서 내뱉곤 했었다.
‘김행철’이라는 내 이름, 담긴 뜻으로 따지자면야 결코 예사로울 수 없을 이름이었다. 삼신당에 백일기도 올리고 천신만고 끝에 낳았더니 다행히 아들이어서 다행할 행(幸)짜 한자는 꼭 넣어서 이름지으라던 도사님의 말씀을 받들어서 지었다나 어쨌다나? 믿거나 말거나.
실로 우여곡절을 지닌 이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든 아이든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야~땡칠아” 한결같이 그렇게만 불렀었다. 그 시절, 개똥이도 많았고, 똥례, 점필이, 판돌이, 삼식이, 문출이도 흔해 빠졌던 시절이었으므로, 까짓거 땡칠이라 불리우는 것 쯤이야 뭐 어땠겠냐 싶지마는,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나는 여전히 땡칠이였었다. 나의 상사들은 사랑스럽게 나를 땡칠이라 불렀고, 나의 동료들은 너무나 친근감있게 땡칠아 땡칠아 그랬으며, 나의 후배나 부하직원들에게 있어서도 나는 언제나 은밀하게 땡칠이로 통하고 있었었다. 멋있고 세련되어보이는 성과 이름이 있었던 만큼, 촌시럽고 무식해보여서 사람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이름이 분명히 있었던 듯 하다. 이름 때문에 속도 많이 상했었고, 괜히 안 들어도 될 주눅까지 드는 때가 많아지면서 이 심각한 고민거리에서 벗어나보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었다. 미아리고개 작명소를 찾아가서 새 이름도 얻어봤었지만 마음에 안들기는 마찬가지 였었고, 아버지께 이름 바꿔주십사 대들었다가 귀싸대기만 얼얼해 졌었던 차에, 이름 바꿀려면 법원에 가서 재판받아야 한다기에 어머나 싶어서 포기하고 말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저런 비즈니스에 파 묻혀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름이나 별명에 대한 콤플렉스 그까짓거야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좀 촌스럽고 분위기 좀 없으면 어떠랴? 부르기 좋고 친근감있는 이름이면 오히려 그것이 더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나는 한참 늙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요즈음은 명함을 주고 받으면서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오히려 내가 먼저 말한다. 저 김행철이라고 합니다, 그냥 땡칠이라고들 흔히 부르지요… 허허허.
사람 만나는 비즈니스를 전화나 사이버상에서도 하는 세상이 되었고, 얼굴을 서로 알리는데에 앞서서 이름 먼저 주고 받는 세상이 되다보니 친근감있고 이미지 좋은 이름이나 별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예 사이버상에서의 내 이름을 몽땅 나(na)땡칠(77)김(kim)으로 통일해서 쓰고 있다. 굳이 번역하자면 “나 김땡칠이요” 그런 뜻이다. 대통령께서도 사이버상에서 국민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신다는데, 어떤 아이디를 쓰고 계실지 궁금하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나는 마당쇠(madangse)나 방자(bangja) 그런걸로 한번 써 보겠다. 우리 고전속의 마당쇠나 방자들이야 말로 집안의 대소사를 묵묵히 책임져 주던, 무진장 든든하던 해결사들 아니었던가 말이다. 김행철 <㈜유알어스 대표>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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