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시장에서 약자 구하기
⑥ 시장에서 약자 구하기
  • 임석필 교수
  • 승인 2008.04.14 01:48
  • 호수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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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M&A는 시장경제의 백혈구 같은 존재

우리는 약자를 응원하고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효율성이 중시되는 자본시장에서는 약자구하기가 오히려 모두에게 피해를 가져오는 수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적대적 M&A에서 인수대상기업(target firm)을 무조건 동정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M&A 시장에서 인수대상기업은 무능과 부실경영으로 저평가되어 있거나 투자처를 찾지 못해 많은 여유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기업(약자)들이 유능한 경영진과 충분한 자본을 갖춘 기업(강자)에 인수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는 것이다.

1997년 삼성그룹은 부실화된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자동차산업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기아자동차의 경영진과 노조의 반발과, 적대적 M&A에 적대적인 언론과 국민 여론, 그리고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반대 때문에 기아차 인수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기아차는 결국 회생하지 못하고 분식회계를 범한 최고경영자는 구속되는 사태에 이르렀으며 IMF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요인 중의 하나로 지목받기에 이르렀다. 그 후 기아차는 현대차에 인수되어 국내 자동차 시장은 현대·기아차가 주도하는 독과점체제로 굳어졌으며, 신규 설립된 삼성자동차 역시 몇 년 후 르노자동차에 헐값에 인수되었다.

이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한 이유는 적대적인 M&A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 여론은 적대적 M&A를 “강자가 약자의 경영권을 탈취하는 것” 정도로만 본 것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에서 M&A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는 경영진을 긴장시켜 경영의 효율성과 기업 가치를 높이고, 경쟁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실기업을 최소한의 사회적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뒤에야 IMF의 요구에 따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적대적 M&A가 가능하도록 법적·제도적인 보완이 이루어졌고, 국민들의 정서도 적대적 M&A의 긍정적인 사회·경제적 역할을 이해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로 국내기업은 외국 거대자본의 적대적 M&A 위협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유명한 기업사냥꾼인 칼 아이칸(Carl Icahn)의 KT&G에 대한 적대적 M&A 위협이다.

외부의 적대적 M&A 위협으로부터 경영권 방어에 불똥이 떨어진 기업들은 적대적 M&A 과정에서 혹시 발생할지 모를 표 대결을 위해 기업의 이익을 투자 대신 자사주매입과 실탄(현금)을 확보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기업의 투자가 부진하고 일자리 창출이 활발하지 않게 된 것이다.

국내 기업이 적대적인 M&A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발생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논의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기업의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차별적으로 많은 투표권을 부여함으로써 표 대결에서 기존 경영진이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1주 1표 주의의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임석필 교수
임석필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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