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두 조카에게
대학생 두 조카에게
  • 서미애(국어국문·87졸) 소설가
  • 승인 2009.09.03 16:17
  • 호수 1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두 명의 조카를 온라인 메신저에서 만났다. 둘은 같은 나잇대라 그런지 관심사도, 고민도 비슷하다. 전공은 달라도 20대의 고민은 같은 것인가 보다.
성인식은 치렀지만 아직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상태. 세계적인 불황이라는데 졸업하면 변변한 직장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내 꿈은 뭔가, 내가 선택한 이 전공이 정말 내가 원하던 일인가 하는 불안감.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반짝반짝 빛나야할 나이의 조카들은 고민이 한 가득이다.
고민 아닌 고민을 들으면서 ‘세상에나 뭐가 걱정이야, 그 나이라면 난 춤이라도 추겠다.’ 몇 번이나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결국 꿀꺽 혼자 속으로 삼켜야했다. 그건 말해줘도 모르는 것. 뒤늦게, 한 20년쯤 지난 뒤에야 돌아보며 그때가 정말 좋았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일이니까. 생각해보면 20년 전 나의 대학시절은 지금의 학생들보다 훨씬 단순하고 명확했다.
입학하면서부터 늘 봐야했던 시위대와 전경들의 대치, 최루탄, 돌멩이, 화염병들은 졸업할 때 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애벌레가 껍질을 깨고 나와 비로소 세상을 보듯 처음으로 사회에 대한 고민하고 ‘나’ 한사람이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와 나라를 걱정했다. 흔히 386세대의 저력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고민과 행동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뒤 동문회를 갔을 때 학교에 나붙은 시위벽보를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세상이 변했으니 시위 문구도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학생식당 메뉴 개선’이라는 문구를 보면서 달라도 너무 달라진 대학생들의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 우리 때보다 정말 환경이 좋아졌구나 하고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론 대학생들이 과연 대학이라는 곳에 와서 더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의 학생들은 오로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당장 졸업 후 취업걱정으로 대학생활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 3학년이 되면 벌써 취업 때문에 고시공부를 하거나, 졸업 후 백수가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휴학을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과연 그렇게 까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해야할까? 물론 우리 때보다 훨씬 더 취업이 어려워지고 경쟁이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경쟁에 참여하는 것조차 두려워서 지레 지나친 걱정을 하거나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방패삼아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전거를 배울 때 아주 금방 배우는 사람과 쉽게 배우지 못하고 넘어지는 사람의 차이는 작은 것에 있다. 자전거의 앞바퀴를 쳐다보며 페달을 밞으면 넘어지기 일쑤다. 차라리 눈을 들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바라보고 힘껏 페달을 밟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넘어질까 두려워 자전거에 올라타지도 못하고, 올라타서도 비틀거리는 앞바퀴만 바라보며 언제 넘어질지 불안에 떤다면 자전거를 타는 일은 점점 두려워지고 힘들어진다.
조카들이 졸업 후 장래에 대해 고민할 때 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왜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부터 해? 어차피 마음대로 상상하는 거라면 긍정적으로,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게 낫지 않아? 그리고 대학 4년으로 네 미래가 완전히 결정되는 것도 아니야.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하고 싶은 건 수시로 바뀌지. 영문학을 전공한 친구는 탤런트가 되어 있고 의상학과를 나온 친구는 동화책을 편집하고 있지. 가장 중요한 건 오지도 않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이야. 오늘, 바로 지금 네가 원하는 일을 해. 그게 네가 원하는 미래가 될 거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