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미술비평에 뜻을 둔 젊은이에게
8. 미술비평에 뜻을 둔 젊은이에게
  • 임두빈(대중문화예술대학원) 교수
  • 승인 2009.11.11 14:19
  • 호수 12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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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예술적 감수성과 폭넓은 지적 체험이 미술비평의 중요한 조건

미술비평은 다양한 연관학문 분야에 대한 깊고 폭넓은 연구를 그 기초로써 요구하는 분야입니다. 왜냐하면 한 시대의 미술현상 속에는 그 시대 인간의 삶의 다양한 요소들이 반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다양하면서도 다층적(多層的)인 제반 정신적 요소들이 조형언어로써 표현된 것이 미술작품이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미술비평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특정의 관점과 특정의 학문분야만을 공부한다면, 결국 여러분은 제대로 된 비평을 할 수도 없을뿐더러 편견에 치우친 시각으로 인해 작품이 지닌 가치의 극히 일부분 밖에는 파악할 수가 없게 되어 작품의 객관적 감상에서조차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편협한 시각은 미술비평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독약입니다. 편협한 관점에 물든 시각은 생명을 지닌 전체성으로서의 예술작품을 그 시각에 맞춰 자르고 비틀고 왜곡함으로써 결국 예술작품의 참된 의미내용을 죽여버리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한 괴물이 지나가는 길손들을 잡아다가 침대에 올려놓고는 사람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긴만큼 잘라버리고,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강제로 늘려버려 죽였다고 하는 끔직한 일화 말입니다. 편협한 비평의 결과는 바로 이와 유사한 것입니다.


미술비평에 뜻을 둔 분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다양한 연관학문 분야에 대한 폭넓은 공부가 그 기초로써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미학(美學)을 포함한 철학과 미술사, 그리고 역사(문화사를 포함한)와 심리학(Freud의 정신분석학과 Jung의 분석심리학을 중심으로한)과 신화학(神話學), 사회학, 인류학 등은 필수이고, 그 외에 우주과학 분야 및 정치경제 분야의 책들을 읽어 둔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공부는 미술비평을 함에 있어서 여러분의 시각을 편견에 물들지 않은 폭넓은 사색의 차원으로 인도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미술비평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천부적인 예술적 감수성입니다. 미술비평을 하는 사람이 아무리 박식하다고 하더라도 정작 실제 작품에 임해서 빛을 발하는 예술적 감수성이 빈약하고 메말라 있다면, 그의 비평은 장황한 지적 수사학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한 비평은 미술작품의 살아 생동하는 핵심을 전혀 밝혀낼 수 없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무덤일 뿐입니다.
다양하고 폭넓은 지적(知的) 체험은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과 하나가 될 때에만 비로소 작품의 가치를 해석해 낼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니까요.


천부적인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과 다양하고 폭넓은 지적 체험의 결합, 이 점이 미술비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 중에 어느 누가 그림을 그리고자 했는데 소질이 부족함을 느껴 미술비평을 공부하려 했다면, 나는 그분에게 단호히 다른 것을 공부하도록 권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안이한 선택으로는 결코 미술비평을 위한 혹독한 시련을 제대로 겪고 극복할 수도 없을뿐더러, 실제적인 예술적 소질이 부족한 자가 고도의 총체적 판단을 요구하는 미술비평을 제대로 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작가는 비평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극소수 예외인 사람은 있겠으나 대부분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의 시각은 특정한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에(사실 이런 점은 그들에게는 장점이기도 하다. 그것은 작가의 독특한 개성을 형성하는 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총체적 시각을 요구하는 비평행위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이렇게 작가들이 지니고 있는 편향된 시각이 적나라하게 노출될 때가 바로 말썽 많은 공모전 심사에서입니다. 심사위원이 된 작가가 자기의 작품경향과 유사한 작품들 만을 뽑아 문제를 일으킨 예를 우리는 숱하게 접해 왔었지요. 특히 부정행위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그런 사태가 종종 일어나는 것은 심사위원이 된 작가가 지닌 시각의 한계 때문인 것입니다.


다양하고 심도 있는 총체적 지식과 풍부한 예술적 감수성이 미술비평가가 지녀야할 필수적  조건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네 비평 풍토에서는 이것만 가지고 비평가로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매우 중요한 사항을 얘기한다면, 외압에 굴복하지 않는 정직성과 강인성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비평의 타락화는 학연과 돈 등 이권에 얽힌 글쓰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여러분, 후기산업사회인 지금의 문화상황은 예술까지도 장사와 쇼로 전락해 버려, 진정한 예술가가 설 수 있는 자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영혼의 빛으로서의 예술의 성스러운 힘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우리는 어둠 속에서 예술이란 탈을 쓰고 활개치는 장사꾼과 사기꾼들의 외침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쇼화(化) 되고 상업광고화 되어버린 이 천박한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영혼이 죽어버린 이 암울한 시기에, 예술은 현실의 어두운 파도 속에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의 섬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잃지 마십시오. 비평은 어두운 현실을 비판하면서 진정으로 위대한 세계를 지향하게 하는 예술의 근원적 힘을 끊임없이 모두를 향해 환기시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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