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대학가가 어수선하다. 의대 정원과 무전공 이슈에다 글로컬(Glocal)대학과 라이즈(Rise,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사업 등 여러 정부 정책이 겹쳐서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글로벌 경쟁력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대학들이 관치(官治)에 휘둘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의대 정원 증원과 무전공 확대는 대학입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이슈다. ‘사교육의 블랙홀’로 불리는 대입은 지속성, 안정성,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고등교육법(34조)에 입학 2년 6개월 전에 각 대학이 대입전형 기본사항을 발표하고, 1년 10개월 전에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공개하도록 명문화한 까닭이다.
그런데 올해는 대입 사전 예고제의 대원칙도 무너졌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놓고 몇 달째 극심한 혼란을 겪다가 최근에야 전국 39개 의대의 2025학년도 모집인원이 나왔다. 국립대 의대는 정부 배정 인원의 절반만 뽑기로 했는데 사립대 의대는 대부분 배정 인원을 무조건 뽑겠다고 했다. 의대 교수가 반대하고 교육여건 검증도 덜 됐는데 말이다.
반면 우리 대학 의대는 차분했다. 정부가 기존 40명 정원을 120명으로 늘렸지만, 이번에는 정부 배정 인원의 절반인 40명을 더해 80명만 뽑고 2026학년도부터 120명을 선발한다.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는 ‘의료 퍼스트’의 기치 아래 개원 30주년을 맞은 단국대병원의 품격이다.
문제는 정부의 의대 증원 최종 결정이 법원 판단에 맡겨졌다는 점이다. 서울고법 행정7부는 “법원 결정이 날 때까지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 계획을 최종 승인하지 말라”며 “이달 중순까지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법원 결정에 따라 정부의 의대 증원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어 수험생은 혼란스러워한다. 정부의 정밀한 정책 부재가 낳은 아이러니다.
무전공 입학은 대입의 또 다른 변수다. 1학년 때 자유롭게 공부하다 2학년 때 전공을 고르게 하는 무전공제는 학생의 교육 선택권 확대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인기 학과 쏠림과 교육과정 혼란, 기초학문 고사(枯死)라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정밀한 설계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교육부는 전체 입학정원의 20~30%를 무전공으로 뽑으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한다. 입학정원이 3,000명인 대학이 750명을 무전공으로 선발하면 재정을 얹어 주는 식이다. 살림이 궁한 대학 입장에선 외면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무전공 도입의 명분이 좋아도 급격한 도입은 부작용이 따른다. 더구나 수시 입시가 코앞인데 대학별 무전공 선발 규모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속이 탄다. 각 대학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교육부 눈치만 본다. 대한민국 지성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2024년 봄, 의대 정원 증원과 무전공 입학이 부른 혼란은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