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화경대
  • 정종원
  • 승인 2004.10.12 00:20
  • 호수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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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속 드라마
“잘한다. 니 마누라 외박하는 것 단속도 못하고.”
“아니 어머니 친정 가서 자고 오는 게 무슨 외박이에요.”
“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TV드라마 대사 중 일부분이다. ‘며느리를 잡으려는’ 시어머니는 아들이나 며느리의 말을 들으려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얘기만 한다. 아들 역시 부부간의 조그마한 사안을 가지고 쉽게 흥분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배제하고 있다.
‘드라마란 다 그런 것’이라고 이해하려 하면서도 어쩌다 안방극장을 보면 싸움으로만 몰고 가는 전개와 천편일률적인 주변요소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드라마의 속성상 평범한 가정을 모델로 그냥 ‘밥 먹고 사는 것’만 보여 줄 수는 없는 일. 때로 싸움도 하고 이혼하고 죽거나 병들고 다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들이 사건의 줄기 만들기는 생략한 채 오로지 “다 그게 그거 아니냐”는 식의 몰이해를 통해 상황을 쉽게 반전시키는 것은 보편적 인간관계를 무시한 행동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그런 화법이 TV를 보는 가족 구성원 간에 조금이라도 ‘감염’된다면 피곤에 찌든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주기는 커녕 화를 부르는 저승사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식상할 대로 식상한 드라마의 주변요소와 관련한 질문 하나. 요즘 드라마에선 등장인물들이 해외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은 데 모두 어디로 갈까? 드라마의 성격과 내용 따라 달라진다고 하면 ‘오답’ 무조건 “프랑스로 떠난다”고 하면 정답이다.
우리 주위 유학 가는 사람은 미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일본 호주 등 많은 나라가 있지만 드라마속의 인물은 오직 “프랑스행”만 외친다. 대체로 예전엔 미국유학이 주류를 이뤘지만 테러가 무서웠던 것일까, ‘전공불문’ 프랑스는 여러 등장인물의 공통적인 유학길이 돼버렸다. 적어도 TV 속 유학길은 두 곳으로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자주 등장하는 외식장면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이번엔 거의 예외 없이 양식당을 고집한다. 한정식은 가뭄에 콩 나듯하고 어쩌다 일식당이 등장한다. 소품으로 테이블위에 소주가 놓이고 여러 명이 모이는 회식장면이라면 모를까 남녀의 식사장면은 거의 비슷한 메뉴와 분위기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적어도 오피스타운의 그 흔한 한식당들이 작가들에겐 철저히 버림받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홈드라마가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안방에서 식구들이 같이 보는 점을 감안 한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시청자들은 돈 주고 찾아가서 보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부담 없이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이 혹시라도 드라마가 인생사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사람들의 보편적 관계와 사는 모습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필요 할 것이다. 안일한 사고방식과 부족한 취재는 다양한 사고를 요구하는 시대의 감각에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
작가들이 방에서 집필만 하느라 생각이 협소해질 수 있다면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하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바란다. 혹시 음식점을 찾는다면 이날만이라도 양식은 피할 것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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